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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로(白露)절기 - 山中秋雨(산중추우 : 산속의 가을비)

손주들을 위한 할아버지 서당 - 한자 성어로 보는 24절기 - 만공(滿空) 배재수

白露下秋空(백로하추공)
백로가 지나니 가을하늘 더욱 높고

山中桂花發(산중계화발)
산속에는 활짝 핀 계수나무 꽃무리

折得最高枝(절득최고지)
가장 높이 핀 꽃다지를 꺾어들고

歸來伴明月(귀래반명월)
밝은 달 벗 삼아 함께 돌아오네


풀벌레 소리와 함께 온 백로에는 찬 이슬로 인해 가을 기운이 완연해진다.
산 속에 들어갔다 가을비를 만났다.

비가 그치자 계수나무 꽃이 물기를 머금고 만발했다. 맨 위에 핀 꽃가지를 꺾어 들고 산을 내려오는데, 어느덧 떠오른 밝은 달이 시인을 따라온다.

작자 : 유희경(劉希慶 1545~1636)은 호는 촌은(村隱),조선 인조시대 천민출신 시인, 임진왜란 의병, 통정대부(通政大夫), 촌은집(村隱集)의 저자다.

지난 일요일 9월 8일은 24절기 중 15 번째 절기 백로였다.
가을 절기 중 하나로 처서(處暑)와 추분(秋分) 사이에 있으며 음력 8월 경에 들어서는데 양력으로는 9월 7~9일이며 본격적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다.

천문학적으로 태양이 황경(黃經) 160도를 통과할 때다.

백로는 밤이 되면 기온이 이슬점 이하로 내려가 흰 이슬이 풀잎이나 물체에 맺힌다는 뜻을 가졌다.

낮에는 강한 햇살로 알곡의 속이 영양분을 생성하여 탱글탱글 해진다.
따라서 백로 무렵에 날씨가 계속 궂거나  계절적 태풍으로 인해 비바람이 며칠씩 몰아치면 알곡이 익지 못하거나 쓰러져서 수확량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백로는 추석성묘를 앞두고 있는 절기여서 이 무렵 최고치로 자라난 잡초를 제거해주는 작업 즉 묘지벌초 풍습이 있다.
추석 2~3주 전 주로 주말에 집중되기 때문에 '벌초교통체증'이라는 신조어도 탄생했다.

또한 논두렁 밭두렁의 잡초도 다 베어 내면서 대부분의 힘든 여름 농사일을 마치고 추수할 때까지 잠시 일손이 한가해지는 때다.

이 때 부녀자들을 근친(謹親; 시집간 딸이 친정에 가서 부모를 뵘)을 보내서 며칠씩 쉬게 하는 풍습도 있었다.

옛 사람들은 백로부터 추분 사이에는 기러기가 날아오고 제비들은 강남으로 날아가며 추분이 가까워지면 새들은 먹이를 저장하기 시작한다고 믿었다.

복숭아 사과 포도 등 과일들이 풍성해지고 벼이삭은 살이 올라 무거워져서 고개를 숙이기 시작한다.
가을의 상징 고추는 더욱 붉어져서 따서 건조하기에 바빠진다.

이 시기에 쓰는 편지 첫머리에는 '포도순절에 기체만강 하시옵고ㅡ' 라는 절기구절을 인용하기도 한다.
백로에서 추석까지의 시기를 포도순절(葡萄旬節)이라고 부르기도 했기 때문이다.

무르익은 첫 포도를 따면 사당(祀堂)에 먼저 고(告)한 다음 그 집 맏며느리가 한 송이를 통째로 먹어야 하는 풍습도 있었다.
주렁주렁 포도알은 다산(多産)을 상징하며 집안의 번성과 풍요를 기원하는 풍습에서 비롯됐다.

경남 섬 지방에서는 백로에 비가 오면 풍년의 징조로 생각하는 풍습이 있다.
 '8월 백로에 비가 오면 십리 천 석을 늘린다' 는 속담은 이런 배경에서 탄생했다.

전남 지방에서는 백로 전에 서리가 내리면 시절이 좋지 않다고 믿었다.
볏논의 나락은 늦어도 백로가 되기 전에 여물어야 하며 서리가 내리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알곡의 여물기가 멈춰서 쭉정이가 되기 때문이다.

제주도 속담에도 '백로전미발(白露前未發)'이라고 해서 백로 때까지 패지 못한 벼 이삭은 더 이상 크지 못한다고 여겼다.

초가을 백로 절기부터는 오곡백과가 풍성해진다.
특히 이 시기부터는 가장 귀한 진객으로 대접 받는 자연산 가을송이가 나오기 시작한다. 버섯중의 버섯 천하일미 최고의 향이 넘치는 자연송이는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적 으로도 최고의 먹거리로 인정받고 있다.

금년 가을에는 가을비가 충분히 내려서 자연송이 생산에 풍년이 깃들고 가격도 저렴해져서 누구나 즐길 수 있길 기대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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