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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컬라이제이션’ 현상의 만연

하림산책 - (박하림 / 수필가, 전 (주) 휴비츠 고문)

‘메디컬라이제이션’(medicalization)은 요즈음에 유난히 두드러진 사회 현상울 표현하기 위해 편의상 만든 용어다.

그 어의는 ‘자가 진단에 의한 의료처치 화 경향’으로 몸에 경미한 이상만 생겨도 병든 게 아닌 가 의심하고 근심 끝에 자가진단을 내리고 쪼르르 병원으로 달려감으로써 드디어 병원순례를 시작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병리현상은 주로 노년층이나 갱년기를 맞은 초로 연치에 생기는 과잉 치료행위이다.

과거에는 의료시설이 부족해서였긴 하지만 웬만하면 참거나 자가 치료를 했으나 지금은 병의 기미만 보여도 병원으로 달려간다. 그런 의식 때문에 국민보건위생의 질이 향상되었고 수명이 연장되었을 것이다.

반면에 건강보험료와 선진의료의 제공이라는 국가적 과제는 여러 가지 문제를 낳았다. 그런 현상 때문에 노년층이 쓰는 연간 건강보험료만 보아도 물경 총건보료예산의 3분지 1이나 된다.

대형 종합병원을 가보라. 꼭두새벽부터 채혈실 앞은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환자들로 북적이는데 거의가 노인이다.

그리고 진료가 시작될 즈음에 이르면 바글거리는 환자들로 온 병원이 법석인다. 대기실의 환자는 6, 7할이 노인이다.

노인환자는 보통 예약시간보다 한 시간 이상을 먼저 와 고작 2, 3분 걸리는 진찰을 기다린다. 그런 환자들 손에 쥐어진 것은 다음 예약일시와 처방전이 전부다.

 의사와 대화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대신 검사라는 매개체가 지배한다. 치료 의사는 거의 로봇 수준으로 문진 몇 마디 나누고는 처방전 발급의뢰 키만 누르면 모든 게 자동으로 이행된다.

의사가 하루에 2백 명의 환자를 진단하고 처치한다는 말이 거짓이 아닌 것이다. 의사의 인격은 없고 기술과 돈만이 있으며 유명한 의사일수록 진찰 예약은 몇 개월을 가다리는 게 보통이다. 사실 환자는 의사 진찰 받기가 옛날 왕 알현하기처럼 어렵다.

그럼에도 병원으로 달려가는 외래환자들이 병원마다 넘치고 있는 것은 국민건강에 적신호가 켜졌거나 질병에 대한 인식에 잘못이 있다는 병적 현상이다.

특히 노인들이 병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가벼운 이상에도 걱정해서 병원을 찾아간다. 의사한테서 별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고서야 안심한다. 만일 의사의 진단이 못 미더우면 메디컬아이제이션 현상의 하나인 ‘병원순례가 시작된다. 

우리는 그런 예비환자를 ’자진 포로‘라고 한다. 자기 발로 걸어가 ’치료‘라는 캠프(병원이라는 수용소)에 들어가 큰 돈 써가며 매일 세 끼니마다 수십 개의 약을 먹어야 안도하게 된다. 그런 현상을 빗대서 그런 포로를 ’플라시보(가짜 약 효과)형 봉‘’이라고도 한다.

노인들, 특히 용돈이 궁하거나 무료한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장소는 공원, 무료급식소, 전철, 노인전용 영화관, 이발소, 식당 등 인데 거기에 병원이 낀다.

거긴 알맞은 냉난방에 영화관을 빼고는 편의시설이 다 갖춰져 있는데 특히 외로운 환자에게 위로가 되는 동병상련의 환우가 있어 시간보내기 대화가 용이하다.

하여 메디컬아이제이션 현상은 ‘나 병원 간다.’는 말로 시작된다. 노인들 대화에 중요한 화두인 것이다. 자식들 무관심에 서운한 노인들의 말벗으로 환우만큼 임의롭고 잘 통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노인환자는 의료상담에 목마르다. 그 대역으로 병원에는 환우말벗이 있다.

우리 인체는 티(T)임파구 같은 면역체계가 있어 면역세포가 염증세포를 제거하거나 억제해 건강을 유지한다. 병증 바이러스가 침투하거나 병증 세포가 나타나면 대항군으로 면역 세포가 출동, 싸운다.

그런 자연스러운 치유기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병원으로 달려감은 스스로 면역력을 약화 퇴보시키는 짓이다.

그런데 그런 면역력은 여러 가지에 의해 형성되고 강화되는데 예컨대 충분한 수면, 적당한 운동, 물 마시기, 사랑이라든가 긍정적 마인드 같은 마음씨에서 생긴다. 그 모든 게 다 공짜로 마음먹기에 따라 얻고 쓸 수가 있다.

하느님이 인간을 사랑하사 주신 선물이란 게 다름 아닌 그런 것 들이다.

그러므로 지나친 병원의존적인 사회현상은 결코 건전하지 못하다. 더 큰 문제는 그 함정을 노인 스스로 판다는 사실이다. 우선 경제적으로 과소비다. 주머니가 가벼운 노인한테는 적잖은 부담을 주는 ‘바보비용’이기 때문이다.

호호야들이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저 M 캠프의 포로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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