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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의 유서

유화웅 칼럼 - 수필가(성결대학교 객원교수, 현)예닮 글로벌아카데미(중고) 교장)
위대한 사람이란 세월이 지날수록 빛을 더욱 발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국적과 인종에 관계가 없이 사랑과 존경을 받습니다.

베토벤(L.V. Beethoven 1770~1827)이 그런 사람 중의 한 사람입니다. 2020년이 그가 탄생한지 25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전세계 음악애호가들이 그를 기리고 있습니다. 방송과 공연을 통해 그의 작품을 연주하며 250주년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베토벤은 많은 질병에 시달렸습니다. 간경화, 신장질환, 폐질환이 있었고 가장 절망적인 질병은 귓병이었습니다. 귓병이 심해지자 생을 거의 포기하는 상태에서 1802년 32살의 나이에 유서를 썼습니다.

그것이 동생들에게 남긴 ‘하일리겐 슈타트의 유서’입니다.
음악가가 청력(聽力)을 잃는 다는 것은 화가가 시력(視力)을 잃는 것과 같습니다.

‘오! 너희들은 나를 적의에 차고 사람들을 혐오하는 고집쟁이로 여기고 또 쉽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것이 얼마나 그른 일인지 모르고 있다. 겉으로는 그렇게 보이게 된 원인을 너희들은 모를 것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따뜻한 마음과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 뿐이랴? 가치있고 위대한 일을 성취하려는 갈망 또한 끊임없이 불태워 왔다.’

이렇게 본인이 따뜻한 마음과 생각을 가지고 가치 있고 위대한 일을 성취하겠다는 큰 꿈을 소유한 베토벤은 이어서 6년간 불치병으로 시달리고, 사람들을 좋아하지만 고독하게 살 수 밖에 없었다고 하면서 ‘들리지 않아요, 더 크게 말해주십시오’라고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었던 괴로움을 토로합니다.

자기는 마치 유령생활같다고 했습니다. 난청 때문에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것은 또 하나의 고통이고 굴욕적이라고도 했습니다.

더 나아가 절망의 심연으로 떨어져 죽고 싶은 생각밖에 없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베토벤다운 모습은 그런 절망적 상황가운데서도 ‘나를 구해준 것은 예술, 오직 예술(음악) 뿐이다’라고 하며, 동생 카알의 후대(厚待)에 감사한다며 행복하게 근심없이 살기를 당부합니다.

동생의 자녀들에게는 덕성(德性)을 힘써 길러주라고 하며,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오직 덕성일 뿐, 결코 돈이 아니다라며, 덕성이야말로 역경에서도 자기를 지탱해 주었고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았던 것도 예술과 함께 덕성의 덕이었다고 했습니다.

다투지 말고 서로 사랑하고 하며, 죽음이여 언제든 오라, 나는 당당히 네 앞으로 가 너를 맞으리라 잘 있거라. 죽은 다음에도 잊지 말아다오,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유서는 끝을 맺습니다.

32살의 나이에 듣지 못하게 되면서 죽음을 생각했던 베토벤은 이 절망의 정점에서 더 큰 도약을 합니다.
베토벤은 유서를 쓴 후 죽음과 마주하며 그 후 25년간 음악을 위한 음악가의 인생을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1802년 이후 대표적 작품만 보아도 개인적 불행에도 불구하고, 가장 희망적이고 감정이 고양된 교향곡 2번 작곡을 비롯하여, 1804년에는 교향곡 3번 영웅(Eroica),1805년에는 오페라 ‘피델리오’, 1806년에는 교향곡 4번, 1806년에는 교향곡 6번 ‘전원’을 작곡하였습니다.

완전히 청각을 상실한 뒤에도 1812년에는 교향곡 7번과 8번을 작곡하였고 1823년에는 ‘장엄미사’, 그리고 교향곡 제 9번 ‘합창’ 등 불후의 명곡을 작곡했습니다.

1826년 그가 별세하기 1년 전 사색과 환상으로 메워진 현악 4중주를 작곡할 정도로 음악이 호흡이고, 음악이 혈관에 흐르는 음악계의 성자(聖者)이며 절망을 희망으로 바꾼 스승입니다.

베토벤은 자기를 지키고(守己), 자기를 닦고(修己), 자기를 이겨 내며(克己) 음악을 통하여 후세에 길이길이 아름다운 감동을 주는 위업을 남겼으면서도 자기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사라진 무기(無己)의 대인(大人)이라 하겠습니다.

사나운 욕심으로 더 가지려고 하고, 조금이라도 더 누리려는 어리석은 마음을 가지고,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세상에 이름 석자 알리면서 동분서주하였지만 때가 지나면 더러운 이름(汚名)으로 기억되는 사람들과 너무 대조가 됩니다.

그의 교향곡 3번 ‘영웅’이 바로 그 자신이고,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가 바로 베토벤입니다. 그리고 교향곡 제 9번은 인류에게 행복과 기쁨을 주는 영원한 ‘합창’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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