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TC(학군사관)는 국군의 초급장교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대학 3년차에서 선발하여 2년의 훈련과정을 거쳐 졸업과 동시에 임관 시키는 제도이다.
1961년 6월 1일 서울대 외 전국 각 대학에서 시작한 학군단 규모는 2010년 12월 창설한 숙명여대까지 총 120개가 있으며, 배출한 남녀 장교는 19만 4000여 명에 이른다. 이 중 장성으로 진급한 동문은 대장 6명을 포함해 총133명(전역99, 현역34)이다.
수은주가 영하 11도를 가리키는 날 강남구 논현동 진철훈 회장의 사무실을 찾았다.
60대 중반 노신사인줄 알았는데, 동안(童顔)에다 앳된 청년의 얼굴이 아닌가! 놀라며 그의 얼굴을 자꾸 쳐다보니 “나이 먹을 만큼 다 먹은 6학년 4반입니다, 허허. 밤낮 너무 바쁘게 살다보니 세월도 나를 못 알아보고 비껴갔나 봅니다”라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그는 1954년 9월 6일 제주도 감귤농장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글자 하나 덜 배우더라도 사람 되는 법을 배우라는 부모의 자녀에 대한 교육열은 대단했단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어김없이 농장으로 데려가 부모를 돕게 했다고 한다.
제주도에서도 몇 안 되는 수재로 불리던 그는 제주에서 고교 졸업 후, 높은 경쟁을 뚫고 한양대 공대 건축학과를 들어간다.
항상 남과 다른 길을 가고 싶어 하는 야망에 찼던 그는 ROTC라는 군복무의 길을 택했다. 대단한 인내와 의지 없이는 해내기 힘든 과정이지만 남이 쉴 때, 방학을 즐길 때 사관후보생 훈련과정을 받으면서 학업을 병행해야 했다.
그는 만기 복무 전역 후 건축사 기술고시에 합격, 서울시청 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995년 민선 1기 조 순 시장의 부임 이듬해 부이사관 승진과 동시에 서울시 신청사 기획단장을 맡아 신청사 건립 산파 역할을 했다. 1998년 민선 2기 고 건(전 국무총리)시장이 오고 도시계획국장에 오른 그는 그해 8월 중대한 국가 소명(召命)을 받는다.
88 올림픽에 이은 2002 월드컵 성공을 위해 주경기장 건설을 총 지휘하라는 임무였다. 건설단장을 맡은 1998년 11월 6일부터 3년간, 설계에서 완공까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세기적 걸작 건축물을 탄생시켰다.
총 6만6704석 규모로 아시아 최대 세계 10대 축구전용구장이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규모는 물론이거니와 그가 더욱 공들인 부분은 아름다운 조형미와 기능성, 그리고 한국적 이미지와 혼을 넣는 작업이었다.
‘21세기의 소망과 정성, 풍요를 담은 우리 고유의 전통 소반과 팔각모반, 그리고 평화와 염원을 방패연에 실어 하늘에 띄우는 이미지와 마포 나루에 드나들던 황포돛대를 형상화한 지붕구조’가 그것이다.
공부도 계속해 1995년 단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도시계획 박사 학위를 받고, 한양대 건축학부에서 후배들을 가르치기도 했던 그는 주택 국장 시절인 2004년 서울시 공무원 직장협의회가 뽑은 ‘베스트 간부’에 선출되기도 했다.
2003년 주택 국장을 끝으로 서울시청을 떠난 그는 더 큰 봉사의 길을 찾아 나섰다.
제주도 사투리를 자연스레 구사하던 그는 고향을 위해 2004년 6월 제주도 도지사 재보궐선거에 입후보 했다.
어떤 정치인, 행정가, 사업가라 할지라도 그가 얻은 직책에 대해서 사리사욕과 개인의 영달은 결단코 멀리 하고, 오직 나라와 사회를 위한 자기희생이 최종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그의 나라 사랑에 대한 철학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가 현재 CEO로 있는 (주)건축사사무소 동일건축은 30여 년 된 연매출 487억 원의 초대형급 건축 사무소이다. 다수의 특허와 600여 명의 직원이 있다. 고급아파트나 복합빌딩 같은 인텔리전트 빌딩의 설계 시공 감리로 특화되어 있다.
그는 4시 반 기상, 아침 운동, 7시 반 출근해 업무에 매달리면서 틈틈이 ROTC 관련 업무 등 대외 업무와 행사에 시간을 쪼개어 쓴다고 했다.
시공을 사뿐히 넘나드는 그가 바로 이 시대의 초인(超人) ‘슈퍼맨’으로 불려져야 할 것 같다.
“힘든 만큼 보람도 큽니다. 부모님의 DNA탓인지 망중한을 즐기는 생활은 내 체질이 아닌 것 같습니다. 걸을 힘만 있다면 활동 해야지요. 이게 내 건강 비법이라고나 할까요.”
정말 부러운 그의 건강이다.
새해부터 맡은 ROTC 총동문 대표로서 외친 ‘영원한 애국심! 따뜻한 사회공헌! 통일 코리아의 희망!’이라는 슬로건을 당당하게 풀어준다. ‘영원한 ROTCian’ 이라는 말처럼, 20만 ROTC 전·현역장교단 들이야말로 애국심과 호국정신으로 응집된 국내최대의 안보 오피니언 리더 그룹으로 영원히 인정받을 것이라는 확신이 배어나온다.
선비 같던 인상이 얘기를 나눌수록 카리스마가 넘치는 선봉대장의 이미지로 오버랩 된다.
과연 그가 초급장교 육군 중위 출신이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지만 그는 분명 외유내강(外柔內剛), 덕장(德將)의 품성을 지닌 지도자이다.
“이제 내 나이 60대 중반, 인생 후반기에 와 있지 않습니까. 이제는 지금까지 받아온 복을 이 나라와 사회에 돌려주기 시작할 때라고 확신합니다. 국가가 부르고 사회가 오라고 손짓하면 어디라도 가겠습니다. 한 조각의 보탬이라도 될 수 있다면 기쁜 마음으로 한 개의 벽돌이 되겠습니다.”
건재하신 그의 부친은 95세 전까지는 장수노인 칭호를 단호히 거절하신단다. 그는 우린 3대가 고교 동문이라며 흑백사진 액자 한 개를 자랑스레 꺼내왔다.
옛날 교복을 입은 어깨동무한 고교생 3명의 사진. 우리 나이로 92세(부), 65세(본인), 33세(아들)를 합한 200세 기념해 테마파크로 개조한 고향 어느 폐고교에서 찍은 거란다. 참 재미있고 부러운 3대 가족이다.
희망이 없으면 삶도 없으며, 따라서 장수에 대한 욕망이 있을 리 없다. 60대 중반에도 40대처럼 활발히 살다보면 장수의 활력소가 솟아나올 거란다.
그들처럼 세대 간 화목하고 효심도 깊은 가풍을 만들 수 있으려면 건강이 우선이다.
바쁜 사람에겐 세월도 피해 간다는 말이 실감난다.
최중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