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피해 사실 폭로로 ‘미투’(Me too) 운동이 확산하는 가운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이 같은 분위기 형성이 피해자의 심리회복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성폭력 사건 피해자는 자책하는 경향이 짙어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거나 피해 사실을 드러내길 꺼리는데, 미투 운동을 통해 사람들의 지지를 얻는 등 심리적 고립을 해소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4일 전문의들에 따르면 대다수의 성폭력 피해자들은 ‘내가 거기에 왜 갔을까’, ‘내가 뭘 잘못한 게 아닐까’, ‘내가 더 단호했다면 그런 일이 없었을까’ 등 자신에게 화살을 돌리면서 극심한 우울감을 호소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피해자들은 무엇보다 본인의 잘못이 아니라고 인식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했다. 쉽게 회복되는 문제가 아니므로 스스로 이겨내지 못했다고 해서 의지박약을 탓하거나 좌절할 필요도 없다고 조언했다.
채정호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선 자신의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받아들여야 한다”며 “자책하고 숨기기보다는 외부에 털어놓고 적극적인 도움을 요청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그는 확산하는 미투 운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채 교수는 “대부분 성폭력 피해 사실을 숨기지만 미투 운동처럼 자신의 상처를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치유 효과가 있다”며 “다만 미투 운동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2차 피해’ 역시 극복해야 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미투 운동에서 본인 사례를 공개했을 때, 피해자의 처신 문제 등을 비난할 경우 재차 상처가 될 수 있으므로 유의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심민영 국립정신건강센터 불안스트레스과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도 비슷한 의견을 내놨다.
심 과장은 “성폭력 문제는 다른 어떤 것보다 심각한 트라우마를 남기지만 외부에 알리지 못해 속으로 곪는 경우가 많다”면서 “미투 운동의 확산으로 이러한 문제를 알려도 괜찮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된 것은 매우 긍정적”이라고 진단했다.
피해 사실을 공개해 가해자의 잘못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문제를 공론화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성폭력 피해자라는 사실을 공개하고 이를 용인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된 것도 긍정적이라고 평가하면서 전문가의 도움을 반드시 받도록 권했다.
특히 피해자의 가족, 지인 등이 부적절한 위로를 하지 않도록 교육과 상담도 병행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심 과장은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재판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처하지 못해 오히려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므로 반드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임명호 단국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성폭력 피해자들은 초기 외상 시에 적극적인 상담, 치료와 함께 가족, 친구를 포함한 정서적 지원이 필요하다”면서 “특히 피해 신고를 망설이기보다는 용기 있는 행동이 결과적으로 정신적 트라우마 예방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