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 내 성추행을 고발하는 시 ‘괴물’로 주목받고 있는 최영미(57. 사진) 시인이 6일 방송에 출연해 문단에 만연한 성폭력 문제를 다시 폭로했다. 해당 시는 한 유명 원로 시인을 떠올리게 해 이날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했다.
최 시인은 6일 저녁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처음에 누구를 써야겠다 하고 쓰지만, 시를 전개해나가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이 막 들어온다.
처음에 자신의 경험이나 사실을 기반해서 쓰려고 하더라도 약간 과장되기도 하고 그 결과물로 나온 문학 작품은 현실과는 별개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 언론사 기사에 해당 원로 시인의 입장으로 보도된 ‘후배 문인을 격려한다는 취지에서 한 행동이 오늘날에 비추어 성희롱으로 규정된다면 잘못된 행동이라 생각하고 뉘우친다’는 내용에 관해서는
“그 문인이 내가 처음 떠올린 문인이 맞다면 굉장히 구차한 변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상습범이고 한두 번이 아니다. 내가 데뷔할 때부터 너무나 많은 성추행과 성희롱을 목격했고 대한민국 도처에 피해자가 셀 수 없이 많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어떤 여성 문인이 권력을 지닌 남성 문인의 성적인 요구를 거절하면 뒤에 그들은 복수를 한다. 그들은 문단의 메이저 그룹 출판사ㆍ잡지 등에서 편집위원으로 있는데, 자신의 요구를 거절한 (여성) 문인에게 원고 청탁을 하지 않는다. 작품이 나와도 그에 대해 한 줄도 쓰지 않고 원고를 보내도 채택하지 않는다. 문제는 그녀들의 피해가 입증할 수도 없고 ‘작품이 좋지 않아서 거절한 거예요’라고 말하면 하소연할 곳도 없다는 것이다. 그녀는 작가로서 생명이 거의 끝난다"고 폭로했다.
다음은 시 ‘괴물’의 전문이다.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
K의 충고를 깜박 잊고 En선생 옆에 앉았다가
Me too
동생에게 빌린 실크 정장 상의가 구겨졌다
몇 년 뒤, 어느 출판사 망년회에서
옆에 앉은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En을 보고,
내가 소리쳤다
“이 교활한 늙은이야!”
감히 삼십년 선배를 들이박고 나는 도망쳤다
En이 내게 맥주잔이라도 던지면
새로 산 검정색 조끼가 더러워질까봐
코트자락 휘날리며 마포의 음식점을 나왔는데,
100권의 시집을 펴낸
“En은 수도꼭지야. 틀면 나오거든
그런데 그 물은 똥물이지 뭐니”
(우리끼리 있을 때) 그를 씹은 소설가 박 선생도 En의 몸집이 커져 괴물이 되자 입을 다물었다
자기들이 먹는 물이 똥물인지도 모르는
불쌍한 대중들
노털상 후보로 En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En이 노털상을 받는 일이 정말 일어난다면,
이 나라를 떠나야지
이런 더러운 세상에서 살고 싶지않아
괴물을 키운 뒤에 어떻게
괴물을 잡아야 하나
<황해문화>, 2017 겨울, 128
트위터에서 운영되고 있는 ‘문단 내_성폭력_아카이브’는 최근 이 시 전문과 함께 “문학이란 이름으로 입냄새 술냄새 담배 쩔은 내 풍기는 역겨운 입들. 계속해서 다양한 폭로와 논의와 담론이 나와야 한다. 적어도 처벌이나 사람들 눈이 무서워서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도록. 최영미 시인님 고맙습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이 글은 현재까지 1400여 회나 리트윗됐다.
누리꾼들은 시의 해당 인물로 짐작되는 시인의 실명을 언급하며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최영미 시인은 1992년 ‘창작과 비평’으로 등단, 민주화 세대의 빛과 그림자를 노래한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1994)를 발표해 베스트셀러에 올리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