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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마을 철물점에 커피숍 차린 30대 화가 부부

라떼아트까지 섭렵했지만 인기 메뉴는 '건강차' 작업실도 겸한 공간…영정사진 그려달란 주문도
 "인스타그램을 보고 찾아온 젊은 손님들도 있습니다. 동네 분들은 입소문을 듣고 삼삼오오 놀러 옵니다."

홍성군에 커피숍 연 화가 김초롱씨
 

    지난해 말 충남 홍성군 홍북읍에 커피숍을 연 김초롱(34·여)씨는 "손님들이 몰려드는 것이 아직은 얼떨떨하다"며 수줍게 웃었다.
    대전에서 나고 자란 김씨는 남편 직장 때문에 3년 전 충남도청이 있는 홍성 내포신도시로 이사했다.

    당시만 해도 아무런 연고도 없는 홍성에서 전공과는 관련 없는 일을 하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목원대 미술학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김씨는 같은 과 선배였던 지금의 남편(37)을 만나 결혼한 뒤 수년 넘게 대전의 한 미술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남편이 다른 지역 입시미술 학원으로 직장을 옮기면서 이사를 하게 됐을 때도, 막연히 경력을 살려 미술 홈스쿨을 하게 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문득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결혼해 일과 육아를 병행해 오면서 제대로 쉬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쉬면서 평소 좋아하던 커피를 배우기로 마음먹고 지난해 초부터 바리스타 공부를 시작해 3개월 만에 자격증을 땄고, 핸드드립과 라떼아트 과정까지 연달아 끝냈다.

    1년 정도 동네 커피전문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실습까지 마치고 나니 왠지 모를 자신감이 샘솟았다.

    마침 대학원 석사 과정에 들어가 개인 전시회를 준비 중인 남편에게도 작업실이 필요했고, 김씨 역시 커피 향을 맡으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화가 부부는 지난해 12월 평소 꿈꿔왔던 커피 작업실을 마련했다.
    철물점이었던 120여㎡ 규모의 가게 한 켠에 남편이 그린 김씨의 자화상과 인물화 등 작품과 이젤, 물감 등을 배치했고, 나머지는 커피숍으로 꾸몄다.

 

 


    예산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옛 철물점 간판을 그대로 두고, 철물점에서 사용했던 가격표가 그대로 붙어 있는 못·나사 수납장도 인테리어로 활용했다.
    남편이 직접 만든 조명과 공방에서 주문 제작한 테이블과 의자로 내부를 꾸미고, 철물점 간판 옆에는 궁서체로 가게 이름을 써넣었다.

    문을 연 지 두 달 밖에 되지 않았지만, 촌스러운 가게 외관과 미술관처럼 세련된 내부가 이루는 부조화가 오히려 입소문을 내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김씨는 "돈이 없어 철물점 이름을 못 지웠는데 오히려 이게 독특한 레트로(복고풍) 분위기를 내는지 사진을 찍는 젊은 분들이 많다"며 "반면 어르신들은 '간판이 촌스럽다. 좀 떼라'고 장난스레 성도 낸다"고 말했다.
김초롱씨가 운영하는 작업실이 있는 커피숍
 

    중장년층 손님이 많다 보니 보통의 다른 카페와 달리 아메리카노나 카페라테보다 막도라지와 배, 생강 등을 넣고 끓인 건강차나 과일 수제청 등이 특히 인기다. 김씨는 "마을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오셔서 동네 사랑방처럼 즐겨 이용하고, 영정사진으로 쓸 그림을 그려달라고도 하시는 분도 있다"며 "예전에는 메뉴에 크림모카는 없느냐고 물어보던 분들이 많았는데, 요즘에는 젊은 층이 건강차를 더 즐겨 찾는다"고 전했다.

    창업이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아니었던 만큼 김씨의 목표는 커피숍을 '핫플레이스'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김씨는 언젠가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 영감을 공유할 예술인을 모집하고 있다. 대관료는 무료이다.

    김씨는 "초상화 주문이 많이 들어오지만 전부 고사하고 있다"며 "커피를 마시며 아이디어도 얻고 함께 작업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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