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임수희님에게
박성실(수필가, 월간 ‘좋은수필’ 편집위원, 전 대한가정법률복지상담원 인천지부 원장· 부 이사장)
엄마, 유난히 추웠던 겨울 끝자락에 설 명절을 지냈습니다. 흩어져 지내던 가족들이 모여 마냥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요. 티 없이 자라는 두 아기를 볼 때마다 엄마가 곁에 계셨다면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하는 생각에 더없이 그립기만 합니다.
일상 속으로 서둘러 돌아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노라니 명절이면 바리바리 챙긴 보따리를 건네주시고, 제 차가 사라질 때까지 손 흔들던 엄마 모습이 어른거려 눈앞이 흐려집니다.
워킹맘 시절, 아이를 엄마에게 맡기며 적적한 두 분께 웃음을 선물하지 않느냐고 큰소리쳤던 철부지였지요. 그때는 토요일에도 근무를 하였기에 엄마는 온전히 제 아이를 돌보시느라 꼼짝도 하지 못하셨지요. 엄마의 일상을 그렇게 구속했지만, 힘들다거나 자유롭고 싶다는 말씀 대신 제 아이가 건강하게 잘 크는 모습이 마냥 사랑스럽다고 하신 엄마.
제가 아쉬울 때 뻔질나게 드나들던 친정이었지만, 일을 그만 둔 이후부터는 저도 모르게 발길이 뜸해졌지요. 한창 공부하는 두 아들 뒷바라지에 분주하고 못다 이룬 꿈을 실현해보겠다는 이유로.
요즘 바쁘니? 제 전화를 기다리다 못해 조심스레 전화하신 엄마.
으응, 좀 바쁜데… 무슨 일 있어요?
그냥….
언제 시간 날 때 갈게요.
그리곤 잊기 일쑤였습니다.
길눈이 유난히 밝으셨던 엄마는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혼자가 되셨을 때 두 분이 즐겨 다니시던 곳에 차를 갈아타면서 다녀오시곤 했다면서요? 한참 후에서야 말씀하셨습니다. 당신께서 더 이상 혼자 걸을 수 없게 되셨을 때 비로소. 그 쓸쓸하고 외로웠을 발걸음과 옷자락을 스쳤을 찬바람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저는 그때 엄마의 마음을 읽었어야 했습니다. 고운 옷을 사드리고 용돈을 드리고 맛난 음식을 갖다 드리기보다 엄마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함께 하는 시간을 가졌어야 했던 것이지요. 제가 해드리고 싶은 것보다 엄마가 원하는 사랑을 드리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엄마는 이미 삶의 끈을 서서히 놓고 계셨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