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3째주 금요일 오후2시부터 5시까지 국회의원회관 제2회의실에서 의미있는 역사포럼이 진행되고 있다. 주관자인 한뿌리사랑 세계모임(대표 김탁)은 “우리 민족의 영과 혼이 하나되는 역사의 뿌리를 밝히는 모임”이라며 “왜곡된 역사교과서로 공부하는 젊은이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바로 세우고 한국민족의 정체성을 밝혀내는 운동을 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지난 제28회 여의도 역사포럼에서는 중국이 한국의 일부였다는 심백강 교수의 강의로 눈길을 끌었다.
강연에서 심백강 박사는 “국격보다 중요한게 바로 국본인데, 중국 공산당의 시진핑 주석의 발언은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근본을 무너뜨리려는 중대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정치권, 강단, 사학계 등이 침묵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면 참으로 울분을 참을 수가 없다”는 심경을 밝혔다.
이날 강의 내용은 영문으로 번역하여 전 세계 각국의 대사관에 배달되었다. 다음은 그 내용 중 일부다.<편집자 주>
1. 시작하는 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해 4월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가운데 개최된 미, 중 정상회담에서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라는 망언을 하였다. 이를 트럼프 미국대통령이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공개함으로써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 후 시진핑 주석이나 중국정부 당국은 트럼프가 한 말에 대해서 진위를 밝히는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았다. 한국 정부에 대해서는 또한 그 말의 오류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발언도 없었다.
대동재단(공동대표 허신행, 심백강)에서는 공개질의서를 중국의 중남해와 주한 중국대사관에 발송하여 시진핑의 동북공정 논리에 의한 잘못된 역사인식을 지적하고 해명을 요구했으나 지금까지 아무런 답변이 없다.
이는 중국정부가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였다”라는 시진핑의 발언을 망언이 아니라 정당한 발언으로 간주하여 기정사실화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1만년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인의 민족적 긍지와 자긍심에 깊은 상처를 남긴 이러한 발언에 대해 중국은 사과 한마디 없었고 발언의 잘못을 인정하여 취소하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대한민국 국민은 언제라도 누구나 이의와 반론을 제기할 권리가 있다.
더구나 역사학자의 입장에서는 역사적 진실을 밝혀 중국과 한국의 지도자와 국민들에게 바른 역사를 알게 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고 할 것이다.
시진핑의 “한국은 역사상 중국의 일부였다”라는 망언은 오늘날 한국인이 살고 있는 한반도가 역사상에서 중국의 일부였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본 발표는 아래에서 역사상 한반도가 중국의 일부가 되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며 그와는 정반대로 중국대륙이 한민족의 터전, 즉 한국의 일부였다라는 사실을 중국의 고대문헌과 고고학적 자료를 통해서 밝히고자 한다.
한국 특히 중국 역사학계의 비판적 견해를 기대한다.
2. 한민족의 첫 국가 고조선은 발해연안을 끼고 중국을 지배한 왕조였다.
고조선은 우리 한민족이 세운 첫 국가이다.
그런데 ‘산해경’에는 “북해의 모퉁이에 나라가 있으니 그 이름을 조선이라 한다.(北海之隅有國 名曰朝鮮)”라는 기록이 나온다.
여기서 말하는 북쪽바다는 발해를 가리킨다.
중원에서 바라볼 때 북쪽에 있는 바다는 발해밖에 없다. 그래서 ‘맹자’에도 발해를 북해라고 표현한 내용이 나온다. 이는 이성계가 대동강 유역에 세운 반도조선과는 다른 고대의 대륙조선이 발해의 모퉁이에서 건국되었음을 말해준다.
고조선이 발해의 모퉁이 즉 오늘날의 북경부근을 중심으로 건국되었다는 것은 비단 ‘산해경’에 의해서만 증명될 뿐 아니라 송나라 때 국가에서 편찬한 ‘무경총요’에는 “북경에서 북쪽으로 고북구를 가는 중간에 조선하가 있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지금은 중국지도상에 조선하는 지워지고 없다.
그러나 고북구라는 지명은 여전히 중국지도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그리고 고북구와 북경사이에는 ‘조선하’대신 ‘조하’라는 강이 흐르고 있다.
이는 지금의 조하가 1000여 년 전에는 조선하로 불렸음을 말해준다. 오늘의 북경이 일찍이 조선 땅이 아니었다면 왜 북경 북쪽을 흐르는 강의 이름이 조선하였겠는가.
송나라 때 낙사라는 역사학자가 쓴 ‘태평환우기’에는 “하북도 노룡현에 폐허가 된 조선성이 남아 있는데 이곳이 은나라의 왕자 기자가 망명을 해 왔던 조선이다”라고 적혀 있다.
송나라 때 하북도 노룡현은 지금의 하북성 진황도시 노룡현이다. 전 중국에서 풍광이 가장 빼어난 발해만 부근으로 중국 공산당 간부들의 휴양지이자, 모택동이 여름이면 수영을 즐기던 곳 북대하가 가까운 거리에 있다.
중국대륙에서 경치가 가장 아름다운 북대하 부근 진황도시 노룡현에 우리 조상들이 세운 고조선이 있었고 그 유적이 폐허로나마 송나라시대까지도 남아 있었던 것이다.
발해연안 북경부근에서 고조선의 건국을 입증하는 가장 결정적인 근거는 1500년 전 선비족 모용은의 비문에 나타난다.
남북조시대 최고의 문장가였던 유신이 쓴 모용은의 묘비명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조선건국(朝鮮建國) 고죽위군(孤竹爲君)’
선비족은 오늘의 하북성 일대에서 삼국시대에 건국하였다. 모용은의 묘비명은 선비족이 하북성 일대에서 건국하기 이전에 최초로 고조선이 이 땅에서 건국을 하였고 뒤이어서 백이, 숙제의 나라 고죽국이 여기서 건국된 사실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산해경’은 서한시대에 유향(劉向)이 황실의 도서를 정리하다가 발견한 책으로 그때 이미 당시에 통용되지 않는 상고시대의 상형문자로 기록되어 있었다. 그래서 유향은 이를 하우(夏禹)시대 백익(伯益)의 저술로 보았다. 그렇다면 산해경은 4000년 전에 쓰여 진 책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선비족 모용은의 묘비명은 1500년 전 남북조시대 최고의 문인이었던 유신이 썼다.
‘무경총요’는 송나라시대 국가에서 편찬하였고 낙사가 쓴 ‘태평환우기’는 송대 3대사서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유명한 책이다. 이들 두 책은 모두 1000년 전에 편간되었다.
4000년 전에 쓰여 진 ‘산해경’, 1500년 전에 쓰여 진 모용은의 묘비명, 1000년 전에 편간된 ‘무경총요’와 ‘태평환우기’에는 오늘날 북경부근 지역에 대륙고조선이 있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런데 시징핑은 중국 고문(古文)에 조예가 전혀 없는 백화문(白話文)세대, 번체자(繁體字)를 모르는 간체자(簡體字) 세대가 만들어낸 학문적 사기극인 동북공정의 논리에 따라 한국이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였다라는 망언을 미국대통령을 만난자리에서 공개적으로 하였다.
산해경, 선비족 모용은의 묘비명, 무경총요, 태평환우기의 기록에 따르면 오늘 중국의 수도 북경지역을 무대로 최초로 건국한 나라는 우리민족이 세운 고조선이다.
뒤이어 은나라 때 백이, 숙제의 나라 고죽국이 건국을 하였고 삼국시대에 선비족 모용씨가 건국을 하였으며 그 뒤에 몽골족이 중원으로 진출하여 북경을 수도로 하였다. 그 뒤 다시 명태조 주원장과 신라왕족 김함보의 후손인 청나라가 북경에 수도를 하였으며 지금의 중국공산당은 청나라를 이어서 북경을 수도로 하고 있다.
이런 북경의 역사적 연혁을 살펴본다면 북경의 최초의 원주인은 한민족이고 오늘날의 북경 중남해에 있는 한족정권은 원주인이 아니라 우리 한민족이 터닦아놓은 곳에 잠시 입주한 세입자에 불과할 뿐이다. 북경의 주인은 언제 또 바뀔지 모르는 일인 것이다.
그런데 시진핑이 한국은 역사상 중국의 일부였다라고 말하는 것은 지난날 중국대륙 북경 지역에서 건국의 첫 삽을 떴던 원주인의 노고를 무시하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도적이 몽둥이를 들고 주인에게 덤벼드는 적반하장과도 같은 것이다.
‘산해경’, 모용은 비문, ‘무경총요’, ‘태평환우기’등의 기록에 따르면 한국은 역사상 중국의 일부였다가 아니라 중국은 역사상 한국의 일부였다라고 말하는 것이 사리에 맞다.
한국은 역사상 오늘의 중국을 만든 원류이고 중국공산당은 역사상 한민족의 뒤를 계승한 아류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