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은 신이 인간에게 주신 만인평등의 천부적 인권이라고 했습니다. 거기에 남녀노소(男女老少)의 구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배가고프면 음식을 먹어야 하고, 졸리면 잠을 자야합니다. 밥은 특정계층 사람들만 먹는 것이 아니듯, 잠도 역시 특정계층의 사람들만 자는 것이 아니듯이, 성도 역시 특정 계층의 사람들만 누리는 즐거움이 아닙니다.
도로는 새 차만 달리는 곳이 아닙니다. 중고차도 달리는 곳이 도로이며, 새 차라고 반드시 성능이 우수한 것이 아닙니다. 잘 길들여진 중고차 중에는 새 차를 능가하는 성능 좋은 차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더구나 인간의 생리적 본능인 성에 있어서는 어느 특정계층의 전유물로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생명과학이 날로 발전하고 의학이 눈부시게 발전함에 따라 노년기의 건강도 자연 향상되어 필연적으로 수명의 연장도 날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는 노년계층의 욕구가 다양해지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중에서 비중을 많이 차지하는 것이 성적 욕구입니다.
필자는 노년의 입장에서 노인의 성에 관해 관심을 갖게 되어 많은 관찰을 해왔고 노인의 성에 관한 논문을 쓰기 위해 복지관 등에서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인간의 성에의 학제적(學際的) 어프로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3년이 지난 1948년에 소위 말하는 ‘킨제이 리포트’라는 인간의 성에 관한 연구의 보고가 발표되자 미국은 그야말로 발칵 뒤집혔습니다.
특히 성을 전공한 전문가들이나 성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 신선한 충격을 받았고, 더욱이 놀란 것은 미처 몰랐던 그 당시 이미 많은 고령자들이 활발한 성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의학계는 물론, 고령자들에게는 큰 용기를 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킨제이 연구소는 1938년부터 19년간에 걸쳐 남녀 12,000명을 대상으로 시행된 「남성의 성행동」조사보고가 1948년 먼저 발표되었고, 5년 후인 1953년 이어 「여자편(女子編)」이 발표 되었습니다.
인간의 성 이제 정면으로 다뤄야 할 시기
그러나 아직도 우리나라의 경우 성에 대해서는 갈 길이 먼 듯 합니다. 특히 고령자들의 성에 대해서 터부시하는 경향이 짙게 깔려 있습니다.
연전에 ‘죽어도 좋아’라는 영화가 방영 되었을 때 많은 화제를 뿌렸고 고령자들의 열광적인 박수를 받았습니다. 따라서 고령자들의 성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는데 일조를 했습니다.
외국 영화이기는 하지만 ‘죽을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등 국내, 외 영화들이 속속 방영되면서 노인의 성에 대해 과거보다 관심이 많아진 것은 다행으로 여깁니다.
최근 들어와서 KBS 수요기획을 비롯한 각 방송국이 노인의 성에대해 기획프로그램 등을 제작, 방영을 하고 있어 노인들도 과거와는 많이 달라져 관심을 갖게 되었고, 반응도 뜨거운 경향이기는 하나 아직도 많은 노인들의 의식이 굳어져 있어 실지로는 흥미와 호기심, 더 나아가서 실제로 어떤 행동으로 옮긴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 현 실정입니다.
노년은 상실의 시대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년을 상실의 시기라고 말합니다. 물론 그렇게 말 할 수도 있습니다.
생물학적으로 육체가 노화되고, 정년퇴직이라는 제도에 의해 평생을 다니던 직장에서 퇴직을 하게 되니 경제적 상실과 소속으로부터 분리되는 것도 하나의 상실이며, 그로 인해 가장의 위치도 변화를 갖게 되는 등, 많은 것을 상실하게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인간발달 심리학에서는 노년기를 인간발달의 최종기(最終期)로 보아 정신적으로 가장 성숙한 시기로 봅니다.
사뮤엘 울만은 말했습니다.
“청춘이라는 것은 어느 특정한 시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은 마음 가질 탓이다. 나이를 먹었다는 것만으로 늙은 것은 아니다. 사람은 용기와 이상을 잃었을 때 처음으로 늙음이 온다. 세월은 피부의 주름을 늘리지만, 정열을 잃었을 때, 정신은 위축 된다.”
그러나 남자들의 경우 은퇴 후 새로운 인생을 체험할 수 있는 커다란 소득입니다. 직장에 얽매어 살다가 퇴직을 하면 자기가 하고 싶었든 공부나 취미생활도 할 수 있고 가족과 여행도 자유롭게 다닐 수 있습니다.
축구 같은 단체경기에서 전반전이 끝나면 하프타임(Half Time)이 있듯이 인생도 일생동안 경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60대는 인생 하프타임이라 했고 인생 2모작을 설계하여 출발하는 스타트 라인이라고 했습니다. 인생 전반이 부진 했다면 인생 2막에서 복구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합니다. 인생은 한편의 드라마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드라마는 각본이 없습니다. 언제 무슨 일 일어날지 모르는 불확실하고 예측불허의 불안한 드라마입니다. 전반기에 그런 삶을 살았다면 후반에서 만회해야 합니다.
인생 후반이 되면 친구가 얼마나 있느냐가 장수의 조건이라고 하는데 노년기에는 정말 친구가 많을수록 좋습니다. 노년기는 친구에 남녀구별이 없다고 합니다. 이성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기회도 많아지는 게 노년기입니다.
이성 친구는 동성친구에게서 느낄 수 없는 또 다른 감정의 교류가 있습니다.
또 입장과 환경에 따라서는 이성교제로도 발전할 수도 있어서 어떤 점에 있어서는 적극적으로 노력할 필요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것들 모두가 노년에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이어서 노년기가 모두 상실의 시기라고만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정년 후의 인생은 덤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삶
노년의 삶이 어떠했느냐가 사람의 행. 불행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현재의 평균 수명 만으로도 퇴직 후 20~30년을 더 살게 되는데, 그 기간을 어떻게 사느냐가 각 개인의 행·불행을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평균수명은 계속 연장 될 전망이어서 퇴직 후 생존 기간은 더욱 늘어날 것입니다.
수명이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고령자들이 건강해 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노년의 건강은 또한 다양한 욕구를 추구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그래서 정년 후의 인생이 즐겁다고 합니다. 직장에 다닐 때는 직장의 업무에 충실해야 되기 때문에 개인의 취미 활동이나 그 외의 개인적 욕구충족을 위한 어떠한 사적인 일을 할 수 없었지만, 퇴직 후에는 자기가 원하는 공부나, 운동, 취미활동 등,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노인이 아닌 플래티눔(platinum)세대로
일본의 정형외과 의사이며 유명작가로 널리 알려진 와타나베(渡? 淳一)씨는 노인이라는 호칭은 고령자들에게 붙이기는 적합하지 않은 말이니 ‘플래티나(백금)’세대로 부르자고 제창했습니다. 그 이유로는 긴 세월 인생을 살아온 귀한 체험을 토대로 고령자에게만 형성된 마음속 깊이에 숨겨진 눈부시게 빛나는 황금같이 화려하지 않고, 은처럼 수수하지도 그렇다고 야하거나 현란하지도 않으면서 속에서 비치는 광택의 그 귀한 보석 같은 인격을 가진 세대이기에 그렇게 부르자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플래티나 세대의 서약’으로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우리들은 체면에 구애받지 않고
늘 호기심 가득히
즐거움을 추구하며
상대와 자신을 칭찬하며
솔직담백하고 멋진
파괴를 서약합니다.
이제까지 이어져온 나이가 들면 점잖게 집에 틀어박혀 세상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는 것이 고령자들의 문화 이었으나 이제 그런 관습을 파괴하고 나이 값도 못 한다고 하는 소리를 듣더라도 세상이 그만큼 바뀌었으니 노년을 즐겁게 지내자는 그의 주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