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성모병원 박재명 위암센터 교수에게 듣는 ‘위암’
보편화된 위내시경 검사, 이제는 ‘치료의 질’ 더 중요
조기위암 치료내시경 시대… ‘동시성 병변’발견 핵심
#. 김모(53)씨는 3년 전 위내시경 검사에서 십이지장과 연결된 위의 끝 부분(유문부)에 조기위암을 진단받고 큰 병원을 찾았다.
평소 특별한 증상이 없었는데, 갑자기 암을 진단받으니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림프절 전이가 없는 조기위암은 내시경으로도 치료가 가능하다는 의사의 말에 안도했다.
의료진은 시술 전 맨눈으로 감별하기 힘든 종양까지 찾아내는 ‘자가형광 내시경 검사’로 추가 암은 없는지 살폈다. 그 결과 3개의 병변이 추가로 발견됐다. 김씨는 내시경으로 2개의 위암과 2개의 위선종을 제거하고, 6개월 간격으로 2번의 추적 내시경 검사를 받았다. 이후 1년에 한 번씩 정기 검진을 한 결과 재발 없이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다.
우리나라 암 발생 1위는 여전히 위암이다. 국가암등록통계사업 발표 자료(2015년)에 따르면 위암은 전체 암 발생의 17.2%를 차지했다.
다행히 위암은 초기 발견하면 완치할 수 있는 대표적인 암이다. 특히 한국은 국가 건강검진에 상부위장관 검사가 포함돼 있어 40세 이상이면 2년에 한 번 주기의 정기 검진으로 조기에 암을 발견할 수 있다.
덕분에 한국인 위암 5년 생존율은 75.4%로 미국의 31.1%보다도 훨씬 높다. 위내시경 검사가 위암 생존율을 높이는 데 크게 공헌한 것이다. 세계에 비교할 대상이 거의 없을 정도로 위암 검사 비용이 적게 드는 것도 큰 이유다.
보편화된 위내시경 검사, 이제는 ‘질 관리’가 중요
우리나라는 위내시경 검사가 보편화 되면서 더욱 정확한 진단을 위한 내시경 질 관리에도 주력하고 있다. 내시경 설비 수준, 소독 수준, 검사를 시행하는 전문의의 실력 등을 높이는 게 핵심이다.
그동안의 위내시경 가이드라인에는 내시경에서 잘 찍힌 표준화된 사진들만을 적절한 검사의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 기준만으로는 내시경을 하는 의사들이 얼마나 양질의 검사를 하고 있는가를 평가하기 어려웠다.
서울성모병원은 검진센터에서 내시경 검사를 받은 11만1962명을 대상으로 내시경 검사 시간과 상부위장관 신생물 발견율 사이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그 결과 검사자들의 평균 검사시간이 신생물 발견율과 상관관계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또 환자를 오래 관찰하는 내시경 의사일수록 적게 관찰하는 의사보다 위장관 신생물을 발견하는 비율이 높았다.
이 연구는 검진 내시경 검사의 질 관리 기준을 제시한 첫 번째 연구로, 의학적인 의의가 매우 크다는 평가를 받아 소화기 분야 최고의 국제학술지인 ‘개스트로엔터롤로지’(Gastroenterology)에 논문을 게재하는 성과를 거뒀다.
빛으로 암 진단… ‘자가형광내시경’으로 정밀도 향상
내시경은 미세카메라가 장착된 관을 위장관 안으로 삽입해 소화기관의 건강상태를 살펴볼 수 있는 의료기구다. 그중 상부위장관 내시경 검사는 가늘고 긴 관으로 된 전자 내시경을 식도로부터 위, 십이지장까지 삽입한 다음 모니터에 비치는 내부의 상태를 직접 관찰하면서 진단하는 방식이다. 조영제를 마시거나 주입한 후 X-선 촬영을 하는 상부 위장관 조영술 검사와 달리 이상이 발견되는 즉시 조직검사를 할 수 있어 정확한 진단이 가능하다.
위벽은 점막·점막 하층·근육층·장막층 등 4개 층으로 이뤄져 있고, 암세포가 조직에 얼마만큼 깊이 침범했느냐에 따라 병기가 나뉜다. 이중 조기 위암은 종양이 점막이나 점막 하층까지만 침범한 경우를 말한다.
문제는 이런 조기위암이 일반 내시경 검사 때 육안으로는 주변의 정상 조직과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최근 이처럼 일반적인 시야로 확인할 수 없는 위암 병변을 진단하는 ‘자가형광내시경’이 개발돼 사용 중이다. 빛을 흡수하거나 반사함으로써 형광빛을 발현하는 위 점막의 특성을 이용한 검사법이다. 특수 고안된 자가형광내시경으로 점막에 빛을 비추면 정상 점막은 녹색을, 전암 단계 또는 위암과 같은 비정상 점막은 자주색을 띠게 된다.
검진 뿐만 아니라 내시경 절제술 대상환자의 검사에서도 초기 병변 절제술 전 다발성 병변을 확인하는데 자가형광내시경이 유용하다. 678명의 위내시경 절제술 환자를 대상으로 자체 조사한 결과, 일반내시경(449명)보다 자가형광내시경(229명)의 병변 발견율이 두 배 정도 높았다.
다만, 자가형광내시경은 종양 특이성이 부족한 게 단점이다. 자가형광에서 의심되는 곳을 조직검사로 확인해보면 상당수에서 암이 아닌 염증으로 나온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요즘은 차세대 ‘분자영상 내시경 기술’이 한창 개발 중이다.
조기위암에 치료내시경 시대… ‘동시성 병변’ 찾는 게 핵심
조기위암에는 치료 내시경 전성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시경점막하박리술’(ESD)이라는 내시경 시술만으로도 완치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 시술은 조기 위암 중 암이 점막에 있을 때 주로 사용되지만, 최근에는 암이 점막 속으로 파고든 침윤에도 내시경 절제술 후 추적 관찰을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를 보면 내시경으로 조기 위암을 절제하는 내시경 점막하층 박리술 건수가 2011년 2572건에서 2015년 1만6069건으로 6배 이상 늘었다. 내시경 해상도가 높아지고 나이프, 지혈 집게 등 처치 기구가 발전하면서 시술 영역이 확대되는 것이다.
환자는 수술 흉터가 안 남고 전신마취가 필요 없어 회복도 빠르다. 입원 기간이 짧고 치료비가 적게 드는 것도 장점이다. 치료를 받고 나서 위를 보존하므로 수술로 절제한 환자보다 삶의 질에서 큰 차이가 난다.
시술 성공의 관건은 두 개 이상의 ‘동시성 병변’을 가진 환자를 조기에 정확히 가려내는 것이다. 동시성 병변은 말 그대로 암이나 암이 될 수 있는 선종이 여러 개 있거나, 위암 진단 1년 이내에 다른 위치에 암이 발생하는 경우를 말한다.
2007∼2011년 위암 또는 위선종으로 내시경 절제술을 한 환자 1107명을 조사한 결과, 2개 이상의 동시성 병변을 가진 환자가 18.7%(190명)에 달했다.
이들 환자를 내시경 절제술 시행 이전에 동시성 병변을 모두 찾은 ‘완전검사군’과 절제술 후 1년 이내에 또 다른 병변이 뒤늦게 발견돼 치료가 늦어진 ‘불완전검사군’으로 나눠 내시경 검사시간을 비교했다.
이 결과 완전검사군은 6.5분이었던 데 비해 불완전검사군은 3.8분으로 훨씬 짧았다. 그만큼 첫 내시경 때 세밀한 관찰이 중요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내시경 절제술로 위암을 치료한 후 10년 동안 관찰했을 때 5명 중 1명은 다시 재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기존 수술보다 위를 더 많이 남겼기 때문에 의학적으로 예상되는 결과이기는 하다.
하지만 재발했어도 철저한 추적 검사를 받은 경우에는 내시경 절제술로 대부분 재치료가 가능하다. 이제는 조기 위암을 어떻게 치료하는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관리하는 게 좋은지도 화두가 되고 있다.
◇ 박재명 교수는 조기 위암과 조기 식도암 내시경 치료가 전문분야다. 내시경 관찰시간과 상부위장관 종양 발견율 사이에 큰 관련성이 있다는 사실을 규명한 공로로 대한상부위장관헬리코박터학회에서 주는 ‘학술상’을 2017년에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