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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한국은 믿을 수 없는 나라’인가?

장세용(행정학 박사) 아무리 ‘당당하고 결연한 대응’이라도 통상마찰이 ‘반미’로 변질되면 안돼
한·미 간이 통상문제를 놓고 정면충돌하는 양상이다. 

어느 쪽이 먼저 손을 들지 안 봐도 뻔하다. 가까운 일본이 미국과의 통상문제로 충돌했다가 두 손 든 예만 봐도 충분히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한국이 강세로 나왔다. 과연 그게 옳은 통상정책일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절대 아니라고 본다. 그러면 뻔히 질것을 알면서 왜 그랬을까? 

 

美 동맹국 중 韓에만 전방위적 통상 압박

문제의 발단은 미국이 지난 1월 17일 한국산 철강제품에 최대 54%의 고율관세를 추진하는 등 통상압박을 강화하면서 비롯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에 지난달 19일 ‘정면 대응 방침’을 천명했고, 한·미 간 통상마찰은 심화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미국의 통상압박에 대해 청와대 참모들에게 “불합리한 보호무역 조치에 대해서는 WTO (세계무역기구)제소와 한·미 FTA 위반 여부 검토 등 당당하고 결연히 대응하라” 는 지시를 한 것이다. 그는 또 “한·미 FTA 개정협상에서도 부당함을 적극 주장하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동맹국 가운데 유독 한국을 상대로 반도체·세탁기 등 주력 수출품목에 대해 통상압박을 전 방위적으로 높여오다가 이제는 철강제품에까지 고율관세를 추진하겠다는 것일까?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에 대해 정부 당국자들은 “그 이유를 모르고 있다”고 말한단다. 정말 그럴까? 알면서도 딴전을 피우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돌아가는 판세를 읽으면 웬만하면 그 원인들을 금방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그간 문재인 정부가 취해온 비우호적인 대미 자세가 잘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트럼프 정부 측은 문재인 정부가 한미동맹관계를 무시하고 대 중국외교를 중시하며, 특히 대북 관계는 미국과 조율되지 않은 상황에서 급격한 변화를 보인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문 정부 대북 관계 미와 조율없어, 사드 추가배치 등 ‘3불’중국에 약속 

그 한 예가 문 정부는 중국의 사드배치 반대에 동조한다는 오해를 낳았고, 급기야는 “한국은 사드 추가배치, 미 MD 참여, 한·미·일 동맹 등 3가지를 하지 않겠다”는, 이른바 ‘3불’을 중국에 약속한 일을 들 수 있다. 

또 지난해 9월에는 중국의 사드 경제보복에 대해서 “WTO에 제소를 하지 않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국내외 일각에서는 ‘한국이 중국에 군사주권을 내준 것이나 같다’는 비난을 받았다. 

여기에 더해 문 대통령의 특보라는 사람은 ‘3불’을 ‘상식’이라고 떠들고 다녔다. 그러자 미국의 유력 일간지인 월스트리트저널은 사설을 통해 ‘한국은 믿을 수 없는 나라’라는 혹평을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통상압력에 대한 문  정부의 대응은 정말로 믿을 수 없는 나라처럼 하고 있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인 것 같다. 안보는 모르지만 통상에서 만큼은 미국과 갈등도 불사하겠다는 자세를 보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도 최근 “역대 미국 행정부가 ‘안보’와 ‘통상’을 분리하는 정책을 취해 왔듯이 우리도 그에 맞게 대응하려는 것 뿐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런 정부의 대응 자세가 맞는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물론 미국의 통상압박에 대해 '당당하게 대응하라'는 말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말은 국내 정치용은 될지 모르겠으나 통상압박을 피해갈 수 있는 대안은 아니다. 그러기 보다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통상문제의 돌출 원인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진단하고, 처방을 내리는 것이 옳은 것이다.

 

2013년 세탁기 문제로 美 WTO 제소 승소했지만 수천억 피해 보상 못받아

특히 WTO제소문제는 과거의 예를 봐도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잘못하면 실익은 없고 손해만 보기 때문이다. 

미국은 2013년 2월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세탁기에 각각 9.29%와 13.2%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다. 그 때 우리 정부는 WTO에 제소했고, 3년만인 2016년 9월 승소했다. 하지만 미국은 이 WTO의 결정을 따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WTO를 통해 3년간 입은 수 천 억 원의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는 방법도 없었다. 그만큼 제소를 통한 문제 해결은 쉽지 않은 것이다.

물론 우리 정부가 미국 산 상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식으로 무역보복을 하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양국 간 통상 전면전이 될 수밖에 없다. 

만약 무역전면전이 일어날 경우 피해는 어느 쪽이 더 많이 볼까? 우리나라가 훨씬 손해다. 미국과의 무역에서 연간 228억 달러의 흑자를 보고 있는 우리나라에겐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 대통령의 강경한 발언은 우리국민들을 의식한 한낱 정치적인 수사에 불과하다는 평이다. 혹자는 그런 말로 최근 들어 돌아서고 있는 자신의 지지자들을 다시 모이게 하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렇다면 어떻게 했어야 할까? 1980년대 일본의 경우를 타산지석으로 삼았어야했다. 일본은 당시  미국과 전면전을 벌였다가 미국의 무역보복으로 역으로 자국의  산업기반만 허물어지는 낭패를 봤다. 그로인한 후유증은 2010년 이후까지 계속됐다.

지금의 일본 통상외교는 그야말로 이런 전면전의 위험을 피하는 최상의 방법으로 보인다. 일본은 트럼프가 취임하자마자 4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와 70만개의 일자리 창출을 약속하고, ‘미·일 경제 대화’를 출범시켰다. 그런데 무역으로 먹고 사는 우리 정부는 무엇을 했나? 한미동맹을 깨려는 자세만 보였다.  그래선 안 된다.

앞서 언급한대로 현재 미국 측 요구로 진행 중인 한·미 FTA개정협상도 그런 자세로는 우리가 자칫 큰 위험에 빠질 확률이 높다.

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한·미 FTA가 공정히지 못하다고 했다. 그래선지 그는 엊그제 또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으니 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 때문에 현재의 개정협상 역시 양국의 정면대결로 치달을 수도 있다. 그러다가 잘못해서 개정협상이 폐기로까지 가면 큰 일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 경제는 막대한 피해를 볼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별로 손해가 없다.

지난해 기준 우리의 대미 무역은 우리의 전체 무역에서 11.3%나 차지하지만, 반면에 미국의 대한 무역은 3.1%에 불과하다.  더욱이 경제 뿐 아니라 정치·외교· 안보적 측면에서도 우리만 엄청난 상처를 입을 수 있다. 왜냐하면 양국 간 동맹의 상징인 한,미 FTA가 폐기되면 양국의 신뢰관계는 완전히 파탄나기 때문이다. 한·미 FTA 개정협상은 다자간 협상이 아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그것은 힘의 논리를 바탕으로 한 양자 협상으로 진행되는 것이다. 이 점을 정부는 망각해서는 안 된다. 

 

美 통상압박, 정부 대응카드 거의 없어

그런데 안타깝게도 불행한 것은  미국의 통상압박에 대해 우리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적절한 대응카드는 별로 없다는 점이다.

미국은 무역수지 면에서 대한 무역적자가 한·미 FTA 발효전인 2011년만 해도 한 해 132억 달러였는데 발효 5년 후인 2016년엔 276억 달러로 약 두 배나 늘었다. 2017년에는 적자가 228억 달러였다. 그 때 미국은 대한 무역수지적자의 주범이 자동차로 보았고, 이제는 철강제품으로까지 확대하려는 것이다.

이런 추세라면 우리나라가 레드라인이라고 밝힌 농산물과 서비스 등 거의 모든 부문을 협상테이블에 올려놓고 일방적이고 무차별적인 공세를 펼지도 모른다.

문 대통령은 무슨 생각에서인지 오래전부터 ‘안보’와 ‘통상’을 분리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고 한다. 

 

국제정치, ‘안보’ ‘통상’ 분리 어려워

하지만 현실 국제정치에서는 ‘안보’와 ‘통상’은 그렇게 쉽게 분리되는 게 아님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그런데도 정부의 대응방식이 이런 상례와 정반대다.

특히 미국으로서는 우리의 대응방식이 중국의 그것과 같다는데도 내심 불쾌하게 생각할 수가 있을 것이다. 중국은 지난 17일 성명을 통해 “미국 측이 최종적으로 중국 이익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집행한다면 반드시 필요한 조치를 내려 정당한 권리를 지킬 것”이라고 경고 했었다.

우리의 ‘당당하고 결연한 대응’과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이런 말은 경제논리에선 맞지 않는다. 이런 말은 안보나 정치에서 쓰이는 수사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통상전략은 어떠해야 하는가? 괜히 국민들에게 ‘반미’를 부추기는 것 같은 말은 우선 삼가야 한다. 그리고 실사구시로 나가야 한다.

상대국도 어느 정도 만족하고 우리도 실익을 챙길 수 있는 ‘윈윈’ 정책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이 왜 그러는지 도대체 모르겠다”고 할 게 아니라 먼저 왜 그러는지를 정확히 진단하고 그에 맞는 대책을 내놔야 한다.

따라서 앞서 지적했듯이 ‘한미동맹’을 벗어나 ‘한중동맹’으로 기우려지려던 자세를 다시 원 위치로 돌려놔야할 것이다. 대북 관계에서도 ‘비핵화 없이는 제재를 풀 수 없다’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

국내 정치에서처럼 얄팍한 수의 외교·안보·통상정책은 국제관계에선 절대 통할 수 없다. 특히 미국의 경우는 더 하다. 지금처럼 대 중국, 대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만 열중하는 자세는 매우 어리석은 짓이다.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지만, 일각에서는 대 미국  강경대응 자세가 좌파를 앞세워 반미를 부추기고 최종적으로는 미군 철수로 유도 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는 모양이다. 이런 우려는 중국의 사드 보복에는 한 마디 항의도 못하더니 미국에 대해서는 전면전도 불사하겠다는 태도가 어딘지 석연치 않다는 데서 나오는 것 같다. 정부는 이런 우려를 말끔히 씻어야 한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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