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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역사상 한국의 일부였다

조 중 빈(전 세계일보 부사장)
산문화 - 중국문명의 모태이고 그 주역은 조이족(鳥夷族)
80년대에 발해연안의 북쪽 요녕성 건평현(建平縣), 능원시(凌原市) 일대 그리고 내몽고 적봉시 홍산 일원에서 제단, 여신묘, 적석총으로 상징되는 건국전야의 홍산문화가 발굴됐다. 

만리장성 밖 한족들이 오랑캐의 땅으로 멸시해온 내몽고 적봉시에서 중원의 황하문명의 상징인 앙소문화보다 연대가 수천 년 앞서는 홍산문화가 발굴됨으로써 중국문명의 발상지가 화하지역에서 동이지역으로 바뀌게 됐다. 
화하족의 선진문화가 동이족에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와는 정반대로 동이족의 선진적인 문화가 화하족의 후진적인 문화에 영향을 끼친 사실이 증명되게 된 것이다. 

고조선은 4300년 전 그러니까 한족이 그들의 첫 국가 하(夏)나라를 건국하기 약 200여년 앞서 단군이 아홉 개의 동이부족국가 구이(九夷)를 통일해 천혜의 땅 발해만 연안에 세운 중국대륙 최초의 통일 왕조이다. 

고조선은 발해만을 중심으로 건국하여 지금의 북경 동쪽 하북성 진황도시 노룡현 일대에 수도가 있었고 북경 남쪽에 있던 갈석산과 요수, 현재의 백석산과 역수유역이 고조선의 서쪽 경계였다. 

발해만 연안은 남쪽은 발해, 북쪽은 내몽고 초원, 동쪽과 서쪽은 농경지대로서 어렵과 수렵과 농경이 동시에 가능한 중국대륙에서 가장 살기가 좋은 천혜의 땅이다. 한민족의 조상들이 전 중국대륙에서 가장 살기 좋은 발해만 일대를 선점하여 터를 잡고 살았다.

중국대륙의 토착민이었던 우리 한민족은 이런 천혜의 땅을 먼저 선점하여 여기서 선진적인 경제가 발달했고 선진적인 경제의 기초위에서 홍산문화라는 중국대륙 최초의 문화가 발화했으며 그 토대 위에서 고조선이라는 중국대륙 최초의 국가 성립이 가능했던 것이다. 

중국 대륙문명의 원류가 홍산문화이고 홍산문화의 주역이 조이족이며 새를 토템으로 하는 조이족의 혈통이 한국인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할 때 시진핑주석의 한국은 역사상 중국의 일부였다라는 발언은 역사사실에 부합되지 않는 황당한 망언인 것이다.  

다음으로 하남성 은허의 갑골문자에 이어 2005년도에 다시 산동성의 창낙(昌樂), 수광(壽光), 환태(桓台), 장구(章丘), 추평(鄒平), 치박(淄博), 청주(?州) 등과 홍산문화 발굴지역인 내몽고 적봉시 일대에서 동이족이 4600년 전에 만들어서 사용한 동이문자인 골각문자가 집중적으로 발굴된 것은 한자가 중국대륙의 서방에 기반을 둔 한족이 만든 문자가 아니라 중국대륙의 동방에서 활동한 동이족이 만든 문자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 것이라고 하겠다. 

중국대륙에서 4600년 전 사용된 최초의 문자가 발굴된 곳이 4300년 전 우리민족의 첫 국가 고조선이 건국되었던 지역이다. 중국의 사서나 고전에 나오는 고대 중국한자의 발음표기가 현대 북경어가 아닌 현대 한국어와 동일하다. 이는 한자가 한족이 만든 글자가 아니라 동이족 특히 한민족의 조상이 만든 글자일 가능성을 입증해준다.

따라서 한자는 그 기원을 따진다면 한자(漢字)가 아니라 오히려 한자(韓字)라는 표현이 정확하다. 중국은 역사상에서 영토적으로 고조선의 일부였고 문화적으로 홍산문화의 지류였으며 사상적으로 복희의 아류였다.

시진핑이 말한 한국은 역사상 중국의 일부였다라는 말은 그것을 문헌적으로 입증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중국은 역사상 한국의 일부였다라는 말은 말장난이 아니다. 문화적으로 사상적으로 영토적으로 중국이 역사상 한국의 일부였다는 사실은 얼마든지 문헌과 고고학적으로 입증이 가능하다. 중국은 역사상 한국의 일부였다. 한국이 없었다면 오늘의 중국은 없다.    

강택민, 호금도는 등소평의 흑묘백묘론에 따라 신장된 국력을 바탕으로 중국대륙과 강토를 맞대고 있는 이웃나라들에 대한 역사의 탈취를 꾀하였다. 티베트, 위구르에 대한 서북공정과 한국에 대한 동북공정이 그것이다.

동북공정의 원래 명칭은 동북변강역사여현상계열연구공정(東北邊疆歷史與??系列?究工程)이다. 이 긴 이름을 줄여 앞의 동북, 뒤의 공정이라는 네 글자를 따서 동북공정이라고 한다.

한국어로 바꾸어 말한다면 중국 동북방 변경지역의 역사와 현대적 상황을 연구하는 과제라 할 것이다. 
중국의 국책연구기관인 중국사회과학원이 중심이 되어 진행했다. 크게 연구류, 번역류, 당안자료류 3대분야로 분류했는데 주요 연구내용을 살펴보면 고대  중국강역연구, 동북지방사연구, 동북민족사연구, 고조선, 고구려, 발해사연구, 중조관계사연구, 중국동북변경과 러시아 원동지역의 정치, 경제관계사연구, 동북변강사회 안정전략연구 등을 포괄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연구 분야는 크게 문제될 것이 없었다. 고조선, 고구려, 발해사연구가 문제였다. 동북공정은 고조선, 고구려, 발해사가 한국의 고대사가 아니라 중국의 고대사라는 일찍이 본적도 없고 들어보지도 않은 기상천외한 논리를 만들어 낸 것이다.
중국은 주인이 따로 있는 것 아니라 동, 서, 남, 북에서 영웅이 나오면 중원에 들어가 주인이 된다. 100년-200년 뒤에 중국의 주인이 바뀌면 그때는 동북공정의 논리는 다 휴지가 될 것이다.

오늘날 시진핑은 동북공정의 연장선상에서 한국이 역사상 중국의 일부였다라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했다. 
왜 중국의 25사에서는 한민족이 중국의 소수민족이고 고조선,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정권이라고 말한 사실이 없는데 오늘날의 중국공산당 정권은 고조선,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정권이고 한민족이 한족의 소수민족이며 한국이 역사상 중국의 일부였다고 주장하는가. 

시진핑 시대의 중국은 이제 달라져야한다고 본다. 공자를 내쫒고 막스를 받아들여 문화파괴를 위한 문화대혁명을 자행한 모택동의 정신을 계승할 것이 아니라 홍위병이 파괴한 문화 복구를 위한 문화대혁명을 일으켜야한다.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론으로 인간을 동물적 인간, 경제적 동물로 타락시킨 등소평의 고양이 철학을 연장시킬 것이 아니라 예의와 염치를 소중히 여겼던 중국의 전통정신을 회복하는데 힘을 모와야 한다. 

강택민, 호금도가 획책한, 이웃나라의 역사를 강탈함으로써 그들이 수천년 동안 소중히 지켜온 국가와 민족을 한입에 삼켜버리려는 악마의 꿈을 키울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중원을 잠시 임차한 주인으로서 주변의 이웃나라들과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지 그 길을 모색해야한다. 이것이 오늘 시진핑의 중국이 나아가야할 방향이다.

이것이 오늘의 중국이 10년 후 세계의 제 1등 국가로 올라설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요 최선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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