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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을 열면서 - “노인, 이제는 호호야 好好爺가 어떠한가”

夏·林·散·策 - 박하림 전(휴비츠고문)
박하림 전(주)휴비츠고문
필자는 본지에 풍유첩諷諭帖을 열려고 한다. 풍유는 산문 같지 않아 보이는 짧은 산문이다. 
감히 대놓고 조파照破하기 조심스러워 산문 형식을 빌어서 슬며시 풍유하려는 것이다. 풍유가 없는 사회는 숨 막힌다. 

풍유는 말은 간략하나 함의가 깊은 은약문隱約文을 짓는 것으로 이를테면 시대적 패러다임에 밀접하게 유관된 지식과 교훈의 가벼우나 유익한 팁을 제공하는 것이다. 

 지금은 어떤 시대인가. 밖은 정보의 홍수에 이상한 속도의 쏠림현상이 풍미하고, 셀폰은 갈수록 주객을 전도시켜 그 주인을 마치 클릭손가락만 날렵할 뿐 골 빈 의존형태소(依存形態素) 같은 존재로 전락시키고 있다.

 과연 이 시대를 향해 무어라 말하며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 하림의 풍유는 그 시류나 풍조를 살펴보려 한다. 

칼럼을 여는 첫 글머리에서 호칭부터 바꾸자는 제안을 하고자 한다.
우리가 노인을 지칭하여 사용하는 호칭은 여러 가지에다 용도가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부르는 ‘노인’ 외에도 노야, 노파, 늙은이, 노인장, 어르신, 할아버지, 할머니, 백두옹, 안노인, 노온(老? 여자노인), 할배, 할망구 등 십여 가지나 된다. 

그런데 그 호칭마다 뉘앙스가 다른 것처럼 각기 그 쓰임새가 다르다. 예컨대 노야 하는 것은 어렵고, 늙은이 하는 건 좀 시건방지다. 무난하고 보편적인 호칭으로 노인이 그중 적합하나 호칭으로 쓰기 거북한 경우가 많은 게 흠이라면 흠이다.

그 모든 부적합한 점을 다 보완하고 말하기도 좋은 호칭이 없나 찾아보았다. 
왜 없겠는가. 세계에서 어휘 표현에 있어 단연 월등한  한글이 아닌가. 

‘호호야 好好爺’라는 아주 마음에 쏙 드는 호칭이 있다. 
너무나 완벽해 신조어가 아닌가도 잠시 의심했다. 자전에 버젓이 있는 표준어다.
저 호칭을 사용해 그 뉘앙스를 비교해 본다. ‘그 늙은이가’ 하는 것보다는 ‘그 노인께서’ 하는 게 더 공손하고 그보다는 ‘그 호호야께서’ 하는 게 더 멋지고 좋게 들린다.

호칭이 중요한 것은 그들이 아버지의 아버지이고 가정을 지키고 사회와 국가의 동량으로 헌신하며 일생을 희생한 위대한 밥벌이 꾼 a great breadwinner이기 때문이다. 

굳이 평범하게 ‘노인’이라든다 하대하듯 ‘늙은이’라고 부를 필요가 없다. 그렇다고 어렵게 ‘노야’니 ‘백두옹’이니 ‘노온’이니 하고 불편하게 부를 것도 아니다.
 하면 ‘호호야’는 어떤가. 우선 소리에 있어 리듬감이 좋다. 두 자 단어에 비해 음감이 더 찰지고 호호 웃는 음감이 듣기에 좋다. 거기다 그 어의語義가 묘하고 뛰어나다.

호(好) 자는 ‘즐겁다, 좋아한다.’는 의미로 호 자가 두 개 겹치면 호호하고 즐거워 웃는 소리가 되면서 즐겁고 좋아한다는 의미가 된다. 호호야를 파자해 풀면 여자가 노인을 좋아한다는 의미로 아내가 딸이 며느리가 그리고 손녀가 좋아하는 노인이 된다.

 사람이 늙으면 서러운 일투성이인데 호칭으로나마 좋아하는 호호야로 불리면 부르는 이나 불리는 이 모두가 좋아하리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일상생활에서도 ‘늙으신 아버지’보다는 ‘호호야 아버지’가 더 좋고 하다못해 노인을 구박할 경우도 ‘늙은이가 주책이지’하고 서글픈 일침보다는 ‘호호야가 주책이지’하면 좀 낭만적인 느낌이 들어 듣기가 덜 민망하지 않나 싶다. 
 해서 이 칼럼에서만이라도 노인 대신에 호호야라는 어휘를 사용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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