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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 전상서

딸 - 김가배, 아버지 김현숙
사진 왼쪽이 딸 김가배(시인, 여행작가), 오른쪽이 아버님 故 김현숙.
아버지! 강원도 평창에 동계올림픽이 성황리에 열리고 있는 소식 들으셨지요.
모처럼 남북한이 단일팀을 만들어 경기에 출전 한다 네요. 

늘 나랏일 먼저 걱정하시던 아버지께서 이 소식 들으셨으면 얼마나 기뻐 하셨을까요.
지금 대한민국은 동계올림픽을 유치 할 만치 세계 속의 대한민국으로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남북선수들이 한반도기를 손에 들고 환호하며 자랑스레 입장하는
광경을 바라보며 분단된 조국이 통일도 멀지 않았구나 하는 간절한 희망을 가져보았습니다.  

아버지 이승과 저승이 종이 한 장 차이라는데 왜 이리 아득한지요.  
40년 넘어 해로 하시면서 부부싸움 한번 없으시던 두 분의 끝없는 사랑, 

그건 저희가 보고 자란 믿음이고 신뢰이고 사랑이셨습니다. 
그런 믿음과 사랑으로 가꾸신 가족이란 울타리 안에 저희 6남매는 행복하게 안주 했었지요
아버지 많이 많이 그립습니다.

아버지 오늘 밤 창 밖에는 밤새 함박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엄마와 같이 누워계신 그곳 유택에도 함박눈이 쌓여가고 있겠네요. 

어머니 가신 후 마음 둘 곳 없으셔서 날마다 산소에 찾아와 정성껏 잔디를 가꾸시던 아버지 외로운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철없는 저희들은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무슨 풀을 매일 뽑느냐고 핀잔을 드렸었지요 “산에서 풀씨가 날라 와서 매일매일 뽑아야 혀!

아버지 그 등 시리던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가슴에 물고랑을 냅니다. 
세상일에 눈이 어두워 아버지께 효도한번 못한 못난 자식,
“허튼짓 안하고 부지런하면 남에게 무릅 꿇는 일 없다” 가르치신 아버지의 사랑을 잊고 세상일에 무릅 꿇는 불효를 하는 못난 자식이었습니다.  .

은쟁반 같은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애들아 보름달을 한번 쳐다보고 자거라 ”  
우리들을 깨워주시던 천상시인이셨던 아버지! .
고된 시집살이에 힘들어하는 내 등을 쓰다듬어주시며  
“슬프면 풀벌레처럼 울면 되지, 좋으면 꽃잎 벙그는 소리로 웃으면 되지” 
“여자가 너무 큰 소리로 웃으면 여자가 아닌거여” 

얼마 전 시골 동창회에 갔다가 아버님 산소에 잠간 들렸었지요.
아버지 생전만은 못해도 그런대로 잘 정리된 선산의 유택이 자랑스러웠습니다. 

윗 선조부터 차례로 모셔진 유택의 석물들은 물론 식수된 꽃들이 제대로 잘 자라고   
아버지 손잡고 걷던 저수지 굽은 길이 벗꽃나무로 예쁘게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저수지 물이 지난 추위에 얼어붙어 수심을 가늠할 길은 없었지만 봄이면 또 참꽃이 피고  연두빛 잎새들이 저수지 안으로 들어와 물결에 흔들리던 그 아름답던 광경을 무량한 마음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이 아득하고 무량한 마음이 아버지를 그리는 제 그리움임을 아버지는 이미 알고계시지요?
매년 5월5일이면 김서방네 남녀노소가 다 공주선산으로 모입니다. 일년 중 하루를 조상님들 뵙는 날로 정해서 열심히 지키고 있습니다. 각자 자신있는 요리들을 장만해서 모이는 그날은 김씨 가문의 祝日입니다. 애도 어른도 친척들이 다 모여서 먹고 즐기면서 유택을 돌보는 날입니다. 남자들은 여기 저기 산소를 돌보고 여인들은 음식을 장만하고 
아이들에게 이렇게 자연스레 조상을 알게 하고 동기간의 유대를 이어가려합니다.   

아버지 지난가을 맹씨 아저씨께서 저희집을 오셨습니다. 
어린 꼴머슴을 길러서 장가 드리시고 전답을 내주어 제곱 내 주셨지요 

그런 아저씨가 이들딸 5남매를 다 길러 시집 장가보낸 지금도 농사지어 첫 수학한 곡물 중  그중 좋은 것을 골라 어버지께 제일 먼저 보내시던 그 아름다운 마음씨를 지금도 저희가 감사히 받고 있습니다. 제발 이제 좀 그만두시라 일러도 “나두 자식이여 그런 소리 말어!”  
막무가내이신 그분의 마음씨가 눈물 나도록 고맙지만 그분을 뵐 때마다 부모님 생각에 더 마음이 더 멍해지고 서늘해집니다. 

아버지 저는 지금 추운 겨울을 살면서 봄이 오는 소리를 듣습니다.
아버지의 가르치심처럼 기도하는 사람이 그러하고 꿈꾸는 사람이 그러하고 내일에 대한 희망을 지닌 사람들이 봄이 오는 저 장엄한 소리를 먼저 듣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곧 봄이 그 아름다운 몸짓을 뽐내며  다가오겠지요. 
아버지 계신 곳에도 그렇게 봄이 올 것을 믿습니다.    

 

김가배 - 시인, 여행작가, 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

시집 <가을 정거장>, 수필집 <나무가 나무에게>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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