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과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위키피디아에 400만개 이상의 지식이 저장되어 있고 의심나는 것이나 모르는 것을 검색하면 즉시 답을 얻을 수 있다.
서가에 꽂혀 있는 백과사전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유투브(You Tube)에는 610만개 이상의 비디오가 무한공간을 돌아다니고 있으며,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서라도 동영상을 올려 전 세계에 뿌려질 수 있다.
어디 그뿐인가. 6000만개 이상의 블로그(blog)에 온갖 지식, 정보, 광고, 선전 등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스마트 시대에 접어들어 손 안에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변화의 속도를 속도 측정기로 측정할 수 없는 숨 가쁜 문명의 시대에 적응하며 산다는 것도 힘들고 피곤해지고 있다.
지식과 학문과 기술을 익히기 위해서 대학에 가야 한다는 당위성도 무력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 사이버 대학들이 지식 정보를 무제한으로 제공하고 있다.
미국 플로리다 주에서는 10여 년 전에 사이버공립학교(Florida Virtual School)를 설립하여 10만여 명의 학생들이 이 과정을 배우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 제도가 곧 시행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시공을 초월하여 인간의 삶의 질을 높이고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한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참으로 고맙다.
이와 같은 변화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행복하고 평화로운 모습이 안 보인다.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아직도 전쟁이 상존해 있고 독재가 있고 테러, 살인, 강도, 사기, 부정부패, 비리, 비윤리, 부도덕 등 인간만이 자행하는 부조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식이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모순을 보게 된다.
교육이 그동안 지식의 축적에는 성공을 했다.
우주선을 발사하고 컴퓨터를 개발하여 무소불능의 기계로 사용되고 있고, 농·공·산업의 발전과 생활의 편익, 지구촌을 하나로 묶는 정보망과 교통망과 통신망의 구축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지식의 영역을 넓혀 왔다.
이에 반해 인간다운 인간이 무엇인가는 질문에는 대답이 궁색해졌다.
인간이 인간답다는 명제가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같이 자신 있게 각인이 되어야 하는데 내면의 요구만큼 그 인간다움이 따라 주지 못하는 것 같다.
세상을 살다보면 필요한 것이 있고 필요한 것을 취하다 보면 그 이상의 욕심이 자신을 지배하게 된다.
그 욕심을 따라 모든 지식과 정보를 이용하게 되고 나아가 각종 분야의 권력을 얻게 되고 그것이 정치를 비롯한 문화권력, 교육권력, 경제권력, 언론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또 다른 권력을 얻어야만 하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된다.
모든 권력은 선한 일에 사용되어 모든 사람들을 섬기고 돌보고 나누고 베푸는데 활용되어야 하는데 그것을 자기 것으로 움켜쥐고 놓지 않으려는데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답다는 것은 도덕적 인간이라는 뜻이고 도덕적 인간은 성실한 인간을 말하고 성실한 인간은 참되고 거짓이 없는 인간을 말한다.
증자(曾子)는 그의 저서 대학(大學)에서 ‘성자(誠者)는 진실무망(眞實無妄)’이라고 했다. 곧 ‘성실이라는 것은 참되고 거짓이 없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마르셀(Gabriel Marcel, 1889~1973)은 너와 나의 만남에는 성실성(誠實性)의 덕(德)을 통해야 자유가 실현된다고 하여 성실을 강조했다.
‘우리’ 즉 ‘나와 너’ 사이에 참되고 거짓이 없는 성실한 인간으로 사회를 구성해야 하는데 그 가장 기본이 되는 ‘도덕성’의 밑받침이 없이 지식과 정보를 이용하여 각종 권력을 소유하는 데만 혈안이 되어 달리다가 낭떠러지를 만나게 된다.
각종 권력의 정점에 있던 사람들의 도덕적 불감증 내기 결핍으로 인해 한 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본다. 곧 ‘유식(有識)한 원시인’의 모습니다.
교육의 모든 출발점과 도착점에는 인간다움을 잃지 않아야 할 도덕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유식하고 가진 것 많은데 원시인처럼 사는 비극은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