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난 여론 확산에 추가 피해자 등장 등 영향 미친 듯
북미회담 등 주요 뉴스에 주목 덜 받으려는 점도 고려
여비서 성폭행 혐의를 받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9일 검찰 소환조사 대신 자진 출석을 선택했다.
공보비서 김지은씨가 방송에 출연해 안 전 지사로부터 4차례에 걸쳐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지 나흘 만이다.
안 전 지사는 이날 오후 5시께 서울서부지검에 출석해 “국민 여러분께, 도민 여러분께 죄송하다는 말씀 올린다”며 “제 아내와 아이들, 가족에게 너무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안 전 지사는 이날 출석에 앞서 오후 3시 39분께 신형철 전 충남지사 비서실장을 통해 기자들에게 보낸 휴대전화 문자메시지에서 “하루라도 빨리 수사에 협조해 법의 처분을 받는 것이 상처받은 분들과 충남도민, 국민께 사죄드리는 길이라고 판단했다”면서 자진 출석 사실을 알렸다.
전날까지만 해도 ‘한시라도 빨리 저를 소환해 달라. (수사에) 성실하게 임하겠다’고 밝혔으나 돌연 ‘자진 출석’으로 입장을 바꾼 셈이다.
앞서 그는 전날 도민과 국민에게 사과하겠다며 기자회견을 할 예정이었으나, 검찰에 출석해 수사에 성실하게 협조하는 게 우선이라며 돌연 취소했다.
검찰이 소환 통보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자진 출석을 선택한 데는 검찰 조기 출석으로 비난 여론 확산을 막겠다는 생각이 깔렸다는 분석이 많다.
안 전 지사의 성폭행 의혹에 대한 비난 여론이 지방선거에 출마한 측근은 물론 민주당 후보들에게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양승조·박완주·강훈식·김종민 등 충남지역 민주당 의원들은 공동으로 성명을 내고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벌어졌다”며 “피해를 본 분들과 국민 여러분, 충남도민 여러분께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추미애 대표가 연일 고개를 숙이는가 하면 안 전 지사의 페이스북에 4000개가 넘는 비판 댓글이 달리는 등 울분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 점도 안 전 지사의 자진 출석을 선택하게 한 요인으로 보인다.
검찰이 성폭행 장소로 지목된 오피스텔을 압수 수색을 하는가 하면 자신에게 출국금지 명령까지 내리는 등 수사에 속도를 내는 점도 자진 출석의 또 다른 배경으로 꼽힌다.
해당 오피스텔이 안 전 지사의 친구가 대표로 있는 수도권의 한 건설사 소유로 알려지면서 검찰의 증거수집이 계속될 경우 청탁금지법이나 뇌물죄 등으로 수사가 확대될 수 있다는 점 등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간 북미회담이 성사됐다는 소식도 그의 자진 출석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사상 최초로 현직 미국 대통령이 북한 최고지도자와 만나기로 했다는 역사적인 뉴스가 나온 데다 금요일 늦은 오후에 출석하면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을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렸다는 것이다.
김씨에 이어 추가 성폭행 의혹이 불거진 점과 자진 출석을 통해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의견 등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안 전 지사의 성격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다.
자기 생각을 정리하는 데 시간이 걸리지만, 생각이 정리되면 곧바로 행동에 옮기는 게 그의 성격이라는 주장이다.
안 전 지사는 과거 불법 선거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던 당시 선고공판에서 “정치자금법 위반이 맞다. 불법자금을 수수했다. 그 죄를 엄하게 물어 달라. 죄를 달게 받겠다”고 말했고, 2007년 대선 이후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뒤에는 스스로 ‘폐족(廢族)’을 선언한 것과 비슷한 행동이라는 설명이다.
지역 정가 관계자는 “돌연 기자회견을 취소한 안 전 지사가 하루 만에 검찰 자진 출석을 선택했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며 “전국적으로 얼굴이 알려져 은신할 곳이 마땅치 않은 것은 물론 비난 여론이 퍼지면서 민주당에 미치는 악영향을 차단하려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는 “안희정의 일방적 출두 통보는 매우 강력히 유감이다. 피해자에 대한 어떤 사과의 행동과 태도도 아니다”라고 안 전 지사를 규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