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족사회가 해체되고 핵가족사회로 이어지면서 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사랑받던 추억들이 차츰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함께 살지 않아도 할머니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고 사랑과 보살핌과 포용과 관용 그리고 베풂의 어느 말로도 설명을 다 할 수 없는 분이 우리들의 할머니이다.
그 할머니들이 가정에만 계시지 않고 세상 밖으로 나와 세상 사람들의 마음에 자리 잡아 가고 있다.
할머니들의 이름이 들어 있는 음식점이나 상품이 지나가는 이들의 걸음을 멈추게 하고 있다. ‘할머니 밥상’, ‘할머니 칼국수’, ‘할머니 된장’, ‘할머니 김치’ 등등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와 그리움 나아가 신뢰감을 주는 상품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한발 나아가 ‘할머니’를 브랜드 화하여 한 단계 발전시키기도 했다.
전북 순창에 다녀왔다.
지방자치제도가 정착하면서 각 지자체마다 지역을 대표하는 여러 가지 사업이 사람들의 발길을 유인하고 있다.
종래에는 지방하면 그 지방이 자랑할 수 있는 자연경관만으로 각인되었었지만 지금은 문화, 산업 등으로 특화되어 우리나라를 뛰어넘어 세계화 하고 있다.
순창은 강천산(剛泉山)이란 아주 빼어난 경관과 계곡으로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지만 종래에는 순창을 다른 기억될만한 특징이 없는 지방이었다.
그러나 순창의 주민들의 지혜는 자연경관만을 자랑하는 정체적(停滯的)사고에서 벗어나 살아 움직이며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산업을 개발하여 전국 나아가 세계적으로 브랜드화 하는 사업으로 성공했다.
그것이 ‘전통고추장’ 제조 사업이었다.
그 지방에서 생산되는 고추를 재배와 판매의 일차산업 수준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가공한 부가가치를 높이는 고추장 산업으로 발전시킨 우수한 사례라고 하겠다.
그것도 단순히 재래의 방식이라는 고식적 틀에서 벗어나 과학적으로 연구 개발하여 전통장류(傳統醬類)를 생산하는 사업으로 성장했다.
더구나 ‘전통’에 초점을 맞추어 일반 기업에서 생산해 내는 상품과 차별화를 시도하여 ‘전통고추장 민속마을’을 조성해 특화하였다.
전통고추장을 제조하는 업체는 50여개였다.
그런데 눈을 끄는 것은 그 제조업체 대표 대다수가 ‘할머니’였다.
2대, 3대 내려온 할머니표를 비롯하여 00 할머니, 000할머니가 직접 담그는 고추장이고 장아찌라고 했다.
순창의 대표브랜드 순창 전통고추장은 할머니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
집에서 가족을 위해 정성을 쏟아내어 가족 건강을 위해 수고를 하셨던 우리의 할머니가 문 밖으로 나오시게 된 것이다.
할머니하면 누구도 상대하려 하지 않고 외로움에 시달리고 질병에 고통 받고 의지할 데 없는 그런 할머니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서 우리 가정을 지켜 내려오시던 그 큰 자리를 당당하고도 자상하며 집안의 가계(家系)와 가풍(家風)을 계승하고 집안을 다스려 나가시던 그 할머니의 모습이 되살아나는 이 시대의 희망을 보았다.
영국에서는 그 집안만이 자랑할 수 있는 전통적인 식단이 있느냐 없느냐를 명문가문의 평가기준 중의 하나로 삼는다고 한다.
각 가정에서도 패스트푸드에 자녀들이 길들여지지 않고 그 집안만의 ‘할머니표’ 식단으로 가풍을 이어나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