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전 인사드리러 가서 어머님을 처음 뵙고 우리 엄마와는 달리 당당하신 여장부의 모습에 ‘엄마들도 저럴 수 있구나. 저렇게 당당할 수 있구나’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었습니다.
28년이 지난 지금의 어머님의 모습을 뵈면 마음이 아파옵니다. 혈관이 막혀 최근 수술까지 하시게 되고, 며칠 후 디스크로 또 수술을 하셔야 합니다.
홀로 계시며 식사도 제대로 못하시고 너무 고생만 하신 어머님의 모습에 마음이 아프답니다.
팔순이 넘으셔서 몸이 여기저기 아프심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자식들을 위해 뭐 한 가지라도 더 해주시려고당신 몸은 생각도 안하고 무조건 헌신하고 계시지요. 이제 그만 하시라고 말씀드려도 알았다 하시고는 어머님은 또 하고 계십니다. 어머님의 사랑은 끝이 없나 봅니다.
강산이 바뀌고 평생이 흘러도 가슴속 깊이 각인되어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그때 생각만 하면 아직도 가슴이 저미고 눈물이 왈칵 올라옵니다.
2006년 11월 말 즈음 매년 바쁜 며느리들 김장해주시느라 그 해도 어머님 아버님 두 분이서 밤새 마늘을 까서 마늘을 빻으러 자전거 타고 방앗간에 가시다 동네 어귀에서 이른 아침 교통사고로 아버님은 처참한 모습으로 하늘나라로 가셨지요.
아버님 장례를 치르고 들어오면서 산더미처럼 두 분이 절여서 건져놓은 김장배추 더미를 보며 앞으로는 평생 김치를 목이매어 넘기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저 배추를 어쩌면 좋은가 가슴 아파 하면서 모두 쓰러져 잠들어 있는 사이 어머님은 홀로 나가셔서 울면서 아버님이 해놓고 가신 배추를 버릴 수 없다시며 씻고 계셨습니다. 우린 모두 달려들어 상중에 눈물 삼켜가며 김장을 했었지요.
두 분이서 비둘기처럼 정답게 사시다가 12년 동안 그 큰집에 외롭게 홀로 남아 계시며 한해도 거르지 않고 아프신 몸으로 매년 김장을 해보내시고 계시는 어머님!
평소에도 시골에 갈 때마다 김치 담아 이것저것 바리바리 싸주시고 저희가 다녀간 빈자리에서 얼마나 쓸쓸하셨어요. 얼마나 허전하셨어요.
약 더미를 한보따리씩 쌓아놓고 드시면서도 자식들에게는 항상 괜찮다 하셨습니다. 그렇게 참을성 많으신 어머님께서 아프다고 말씀하셨을 때는 얼마나 그동안 힘이 드셨을지 짐작이 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전화도 못 드리고 내려가 살펴드리지 못했습니다. 이 지면을 통해 사죄드립니다.
평생을 자식들을 향해 해바라기 하시면서도 자식들이 조금이라도 불편해 할까봐 자식들 집에도 안오시는 어머님!! 27년 동안 둘째 며느리 집에 두 번 오셨습니다. 자식들 집 근처에 놀러 오셨다가도 전화 한통 하시고 그냥 내려가시곤 하셨지요.
어머님!! 이제 그러지 마세요. 충분히 자식들에게 대접 받으실 자격 있으십니다.
충분히 행복 누리실 자격 있으십니다. 이제는 홀로 계시지 말고 오순도순 재미나게 사람 사는 것처럼 다함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예전처럼 큰소리도 쳐가면서 그렇게 당당하게 어머님이 원하시는 대로 하고 싶으신 대로 다 하시면서 예전의 여장부의 모습처럼 이제는 즐기면서 사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