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아보세 잘 살아보세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세.
새마을 운동이 요원의 불길처럼 전국으로 퍼질 때 동네 마을회관의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지던 국민 가요였다. 이것은 우리의 소원이었고 절규였다.
가난, 그것은 우리 국민의 보편적 삶의 모습이었다.
6·25동란으로 인해 도시, 농촌, 할 것 없이 의(衣), 식(食), 주(住)는 아무것도 없었고 어디에나 의지할 곳조차 없었던 잿더미 위에서의 삶이었다.
지금으로는 상상이 되지 않던 상황이다.
한 마디로 살아있지만 죽은 거나 다름이 없었다. 차라리 죽었다면 그 고생은 안했을 것이라는 자학적 위안도 했었다.
온 국민이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자’고 재기의 몸부림으로 새마을 운동 깃발 아래 국민들이 뭉쳤다.
그야말로 손에 삽 한 자루, 곡괭이 하나로 주린 배 움켜쥐고 마을길도 넓히고, 초가집도 없애며 전력질주를 했다.
기업은 기업대로 붉은 주먹에서 수출을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고, 공장에서는 황무지 같은 여건에서 제품을 만들어 냈다. 정부는 수출 총력 정책으로 뒷받침을 했다.
드디어 1964년 11월, 수출 1억 달러라는 성과를 냈다. 그 후 1977년에는 무역 200억 달러, 수출 100억 달러라는 대망의 꿈을 이루어 우리나라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1995년에는 무역 2000억 달러 수출 1000억 달러, 2006년에는 무역 6000억 달러, 수출 3000억 달러로 세계 시장에 충격을 주었고 드디어 2011년 12월 5일 무역 1조 달러 수출 5000억 달러의 시대에 진입해서 세계 9위의 반열에 올랐다.
한반도의 반 토막, 인구 5000만, 6·25전란으로 아무것도 없던 희망이 보이지 않던 대한민국이 유엔 가입 193개국에서 아홉 번째 무역 대국으로 자랑스럽게 자리하게 되었다.
이것은 우리 국민의 자부심이요, 후손에 대한 긍지요, 조상에 대한 떳떳함이라 하겠다.
나아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지구촌의 가난한 나라에 대한 교훈이고, 작은 나라들에 대한 가능성을 제기한 청신호라 하겠다.
무역 1조 달러는 우리나라 돈으로 1128조원이고 100달러 지폐로 차곡차곡 쌓았을 때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인 ‘에베레스트’산 높이로 136개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1달러 지폐로 연결 했을 때 지구를 3300여 바퀴를 도는 길이가 된다고 한다. 참으로 감격스럽다.
한민족의 우수성이 세계에 입증되는 쾌거이다.
한 때 서방 선진국에서는 한국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한국을 기억한다면 6·25 동란을 떠올렸던 우리나라.
그러나 이제는 지구촌 방방곡곡에 대한민국의 우수한 제품들이 깔려 있고, 한국의 인재들이 세계를 누비고 학문 분야 나아가 예체능 등 많은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세계인의 부러움을 사는 나라가 되었다.
또 ‘코리안 드림’(Korean Dream)이라는 용어까지 생겨나서 세계인이 한국에 와서 그들의 꿈을 키워 나가고 있기도 하다.
우리보다 잘 살던 나라들이 ‘파출부 수출국’이 되기도 하고 ‘노동력 수출국’이 된 것을 볼 때 한국인의 근면성과 도전의식, 그리고 강한 집념과 끈기와 역경을 기회로 삼는 지혜가 오늘의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갈릴레이가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했듯이 나라 안이 어수선하고 시끄러워도 ‘그래도 우리나라는 발전한다’고 확신을 가져본다.
대한민국 자랑스럽다.
대한민국 - 이 땅에 사는 것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