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어에 ‘옥시모론(oxymoron)’이라는 단어는 ‘예리하게 둔한’이라는 뜻이다. 사전상 옥시모론은 ‘모순되는 단어들의 조합’으로 정의되어 있다.
요즈음 화자되는 ‘젊은 고령자(young old)’, ‘일하는 은퇴자(working retired)’, 반퇴(semi-retired)’라는 말은 대표적인 모순어법이다. 젊고 건강한 시니어들이 대거 출현하면서 은퇴하기에는 너무 아까운 현실을 대변하고 있다.
필자는 강연장에서 정년을 앞둔 시니어들에게 언제까지 일하고 싶은지 자주 물어본다. 대다수의 시니어들은 일할 수 있을 때까지 언제까지라도 일하고 싶어 한다. 장수시대에 정년 후에 연금만으로 노후를 유유자적하게 보내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생애현역 사회를 실현하려면
한국의 일자리 위원회는 현 시대를 주된 일자리(30~50세), 재취업 일자리(50~65세), 그리고 사회공헌 일자리(65세~은퇴)로 인생 삼모작으로 규정했다.
인생 100세 시대에 맞춰 생애현역 사회를 지향한 인생단계 구분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실제로 장수현상에 맞춰 이미 이전 커리어 경험과 능력을 살려 현역으로 활동하는 시니어들이 대폭 늘어나고 있다.
그렇다고 누구나 생애현역으로 살아가기가 쉽지 않은 현실이다.
우리 사회에는 연령에 기반한 낡은 제도와 관행이 깊게 뿌리박고 있기 때문이다. 생애현역 사회를 실현하려면 연령에 관계없이 일할 의사와 능력이 있다면 계속 일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생애현역 사회를 구축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시니어 인재의 경험과 능력 활용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그들은 오랫동안 익힌 지식과 경험이 풍부하고, 쇠퇴하지 않는 능력으로 사회에 공헌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의욕과 유연성이 떨어지고, 생산성이 낮다는 것은 편견에 불과하다.
현대 사회에서는 신체적 기능보다 지식과 경험, 태도가 중시되는 서비스 업종이 늘어나고 있다. 서비스 분야에서 시니어들은 ICT 활용으로 생산성을 대폭 끌어올릴 수 있다.
시니어 일자리를 늘리면 청년층의 고용과 임금이 늘어나지 않는다는 시각도 많다. 유럽, 일본 등 선진국의 연구결과를 보면 시니어 고용과 청년층 고용에 상관관계가 없거나 완만한 정의 상관관계였고, 대체관계가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즉 기업이 인건비 총액을 늘리지 않고, 시니어 고용을 유지할 경우 임금에 경직성이 있다면 신규 채용을 늘리지 않기 때문에 양자 간에 대체관계가 발생할 수 있다. 임금구조가 유연하다면 양자 간에 정의 상관관계가 나타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또한 경기가 호전되면 회사실적도 좋아지기 때문에 양자 간에 대체관계가 발생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시니어와 청년층의 고용관계는 윈윈 관점
시니어와 청년층의 고용관계는 윈윈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 시니어가 일하면 후 세대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젊은층이나 시니어층만으로 구성된 업종은 숙련된 기술과 노하우를 전승하기 어렵다.
시니어와 젊은 층이 함께 일하면 시니어의 앞선 경험을 전수하면서 경영비용을 줄이고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둘째,시니어의 현재 삶의 여건에 맞춰 다양한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시니어는 개인마다 경제와 건강 상태, 과거의 직업 경험이 다르다.
인생이 길어졌듯이 직업경력도 길어지고 있다. 이제 한 직장에만 장기간 일하지 않고 전직을 통해 다른 경험을 쌓거나 배양한 능력을 활용하면서 다양한 커리어를 추구해나가는 시대가 되었다.
특히 최근 퇴직하는 시니어 세대일수록 일과 여가를 병행하려는 욕구가 강하다. 일을 통해 부족한 노후소득을 보충하고, 삶의 여유를 느끼고 싶어 한다.
일본 시니어들은 현역시절의 경험 살리기를 가장 중시
이웃 일본의 시니어들이 선호하는 일자리 선택기준은 참고가 될 것 같다. 일본 시니어들은 현역시절의 경험 살리기를 가장 중시하고, 다음으로 체력적으로 가벼운 일, 마지막으로 소득수준을 고려하고 있다.
소득을 계속 창출하면서 일의 보람을 느끼고, 체력적으로 감당해야 한다는 점에서 젊은 시절과 다른 일 방식을 선호하고 있다. 시니어의 일자리를 설계할 때 개인 상황을 반영하여 유연한 근로시간을 통해 능력과 경험을 활용하는 다양한 일자리를 만들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셋째, 시니어 일자리가 늘어나면 건강상태가 좋아지고, 의료비 감소로 건강보험재정이 안정되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전되면서 사회복지비용 지출 증가로 인한 재정문제가 대두되는 현 시점에서 그 의의는 점점 커지고 있다.
그러나 현행 연금제도에서는 연금수급자가 연금 이외에 사업소득이나 근로소득이 발생하는 경우 연금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지급 정지된다.
연금의 감액이 시니어들의 취업을 억제하는 요인이라는 다수의 연구결과가 있다. 시니어들은 장래의 불확실한 상황을 연금재원으로 불식시키고 싶어 한다. 근로소득 발생으로 감액되는 연금제도를 장래 연금 수령액에 얹어주는 구조로 제도를 바꾸어 보면 어떨까? 건강한 시니어들이 일하려는 강력한 인센티브로 작용할 것이다.
시니어는 노동력 부족 시대에 가뭄 속에 내리는 단비
2017년부터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가까운 장래에 인구감소 시대로 접어들면 노동력 부족현상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어쩌면 건강한 시니어는 노동력 부족 시대에 가뭄 속에 내리는 단비와 같은 존재가 될 것이다.
생애현역 사회는 개인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지기 어렵다. 국가와 사회가 적극 나서서 생애현역 사회를 지향하는 모델을 구축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