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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배우선론의 맹점

夏·林·散·策 - 박하림(수필가, 전 (주) 휴비츠 고문)
성장이 분배에 우선된다는 건 불변의 진리이다. 
성장이란 정말 피나는 각고의 노력을 경주해 성취하는 것이며 
분배는 그 성과라는 열매를 수확하여 편하게 앉아 나눠주는 것이다. 

성장과 분배의 우선순위를 논함에 있어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오해와 무리를 먼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성장과 분배 중에 어느 것을 우선할 것인가를 가름하는 무리가 문제다. 

정치는 고도의 조화를 지향해야 한다는 건 상식이다. 이른바 ‘당근과 채찍정책’이 그 한 방편이다. 

그런데 우리네 정치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마치 구세주의 등장처럼 정당한 분배에서 소외당한 계층에게 우선적으로 분배를 함으로써 진정한 민주주의 정치를 구현하겠다고 여론몰이를 통해 지지자들을 결집시킨다. 

묻건대 분배할 파이를 손에 쥐고서 자신하는 약속이 아니잖은가.

분배란 손이 하는 것이지 입이 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않는 정치가 문제인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분배의 모태인 성장의 주체가 기업임에도 분배의 결정이 항상 정치적으로 이뤄진다는 모순이다. 

가장 이상하게 오인된 문제는 분배우선론을 경제 원리에 입각하기보다는 이념적 또는 심한 경우 정치적으로 접근, 그 합리성을 정립하는 오류이다. 한 마디로 그 과제는 경제적 가치의 비교에 그 타당성을 두어야 한다.

지금 도론의 첨병처럼 무리한 주장을 일삼는 분배우선론은 아주 간단한 진실을 오해 내지 남용함으로써 혼란을 자초했다. 
성장우선론과 분배우선론을 이해함에 있어 개념의 정의를 바르게 하지 못했다.

즉, 성장이나 분배가 다 기업에서 이뤄지며 그 성장의 추진주체나 분배의 수혜대상이 같은 종업원인 근로자임을 간과하여 마치 성장과 분배가 다른 과제인 것처럼 다룬다는 것이다. 

성장을 기업의 일로, 분배는 사회적 과제로 이해하는 것은 잘못이다. 
 성장과 분배가 무엇을 창출하여 어떻게 나눌 것인가는 그 대상이 딱 한 가지다. 그건 처분 가능한 파이다.

흔히 실제로 나눌 수 있는 파이의 크기를 모른 채 소리 높여 내주장하는 것이다. 장차 얼마나 크게 파이를 구어 낼 수 있는지 성장을 확신하지 못한 채 이상적 분배정의만 외치는 것은 무책임한 인기영합주의다. 
성장이 분배에 우선된다는 건 불변의 진리이다. 

그런데도 분배우선론자들의 목소리가 더 크고 지지하는 인기가 더 높은 것처럼 보이는 것은 저들이 그 과정에 참여하지 않으며 그 결과에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도 가장 인간적이고 온정적인 것처럼 아주 그럴듯하게 당의를 입히기 때문이다. 

성장이란 정말 피나는 각고의 노력을 경주해 성취하는 것이며 분배는 그 성과라는 열매를 수확하여 편하게 앉아 나눠주는 것이다. 

어느 편에 노고가 더 많고 공이 더 큰 가를 가름할 수 없을 리가 만무하다. 한데도 어찌하여 분배우선론자들의 목소리는 항상 더 크고 더 당당하며 더 달콤한 가 모르겠다. 듣는 이의 현명한 판단이 요긴하다. 

성장이 얼마나 큰 파이를 구어 내는가에 따라 가능한 분배의 규모가 결정된다는 이치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분배론자들은 분배의 미덕을 요란하게 강조하기에 앞서 성장의 추이를 주시하여 자신의 분배계획이 실행가능한지를 검증해 봐야 한다.

성장이고 분배이고 모두가 기업에서 일어나고 성취하는 실천경제이지 탁상공론이 아니다. 

분배에 정치권력이 개입하여 콩 놔라 팥 놔라 하면 분배에 헛바람 들기란 여반장이며 그 정권이 맛들인 당근이 줄거나 끊기면 수혜자들은 그것이 누구의 땀으로 길러 수확한 것인지도 모른 채 다음 정권을 향해 주먹질을 해대게 되고 성장의 수레를 끄는 일꾼들은 더욱 허덕이며 억울한 땀을 쏟게 된다.

성장의 고된 행군에 한 번도 참여해보지 않은 분배우선론자들의 경솔한 입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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