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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달라져야 한다

유화웅 칼럼
맹자(孟子)와 같은 시대에 사상가이며 철학자인 장자(壯者)가 하루는 친구의 집에서 자게 되었다. 그의 친구는 하인을 시켜 기러기를 잡아 장자(壯者)를 대접하게 했다.

하인이 주인에게 ‘기러기 두 마리 중에서 한 마리는 잘 울고 다른 란 마리는 잘 울지 못하는데 어느 것을 잡을까요’하고 물었다. 주인은 ‘울지 못하는 놈을 잡아라’라고 했다고 한다.

이를 본 장자(壯者)의 제자들이 장자(壯者)에게 ‘선생님, 아까 한 나무가 목수(木手)에게 쓸모 없는 나무로 판정되었기 때문에 베어지지 않고 제 수명대로 살 수 있었다고 하셨는데, 이번에는 쓸모가 없어서, 즉 울지 못해서 죽게 되었으니, 사람은 어떻게 처세해야 합니까?’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장자(壯者)는 ‘나는 쓸모 있는 것과 쓸모없는 것 사이에 살겠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쓸모 있다는 것과 쓸모없다는 것은 지극히 상대적 가치이다. 그런데 상대적 가치를 두고 절대적 기준으로 설정해놓고 사는 경우가 많다.

내게는 쓸모 있는 것이 남에게는 쓸모없는 경우도 있고 또 그 만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무용(無用)의 유용(有用)’의 논리와 같다.

쓸모없는 것이 쓸모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하더라도 쓸모없는 것은 쓸모가 없는 경우가 있다.
‘말[言語]’은 쓸모없는 말은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장자(壯者)는 언자풍파야(言者風波也)라고 했다. 하지 않아야 할 말, 해서는 안될 말, 예의가 없는 말을 하면 사람과의 관계에서 커다란 풍파가 일어난다는 뜻이다.

그런데 요즈음 청소년들이 그야말로 욕설에 묻혀 사는 모습을 본다. 심지어 사용하는 말이 욕설이 들어가지 않으면 말이 안 되는 것 같이 언어생활을 하고 있다.

욕설을 욕설인 줄 모를 정도가 되었다.
참으로 딱한 노릇이다.

모두가 어른들의 책임이다. 잘못 가르친 교육의 탓도 있다.
청소년의 언어생활은 위험 수위에 달해있다. 쓸모없는 말들을 정화하고 다듬어서 쓸모 있는 말의 세계로 돌이켜야 한다.
‘고운 말’을 써야 하고 ‘바른 말’을 쓰도록 해야 한다.

옛말에 ‘예가 아니거든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라’(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고 가르치고 있다.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인격이 나타난다. 아무리 높은 지위에 있는 이들이라 하더라도 말 한마디 예의에 어긋난 말을 하면 그것으로 인격의 파탄자 대접을 받는다.

예의 바른 말, 예가 되는 말을 사용하도록 모든 어른들과 또 각종 매체 등에서 지속적으로 노력을 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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