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人文이란 인간으로서 마땅히 지켜야할 도리인 인륜의 길을 의미한다. 인문의 도정道程이란 도덕을 지향하는 길이다.
그러므로 인문의 도정을 간다는 것은 인간답게 산다는 의미다.
사람마다 사는 길이 다르고 삶의 모양과 질이 다르다.
그러나 인간답게 살아야 된다는 명제는 다름이 없고 다만 그 지향하는 도리의 내용이 다를 뿐이다.
명현名賢으로 추앙 받는 율곡은 저 인문의 도정을 방해하는 세 가지로 ‘성색(聲色)’과 ‘화리(貨利)’와 ‘편사(偏私)’를 들었다.
저 방해거리가 호호야의 인문 도정에 어떻게 연루돼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노후의 삶이 결코 죽은 듯이 사는 삶이 아니기 때문이며 모든 세대가 황혼열차에 탑승한 호호야들을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호호야의 인문도정을 방해하는 ‘성색’은 노래와 여색을 의미하는 것으로 감각적 즐거움을 말한다. 호호야에게 인문의 도정을 방해할만한 여색이 과연 있기는 한가. 설사 정신적으로는 아니더라도 육체적으로 성색이 문제될 정도로 영향을 준다는 것은 기우일 것이다.
호호야의 성욕이 인문도정을 방해할 정도라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그렇다고 늙으면 성과 담을 쌓게 되는 것은 아니다. 황혼기에 호호야의 성색은 말할 수 없이 로맨틱하고 애틋하다. 공자는 연치가 칠십 줄에 들어서서 호호야가 욕망을 쫓아도 도리에 어긋나는 법이 없다고 했다. 호호야에게 성색은 젊을 때와 달리 독이 되기보다는 활력소가 된다.
화리는 물욕을 뜻하는데 호호야가 물욕에 사로잡히면 노후가 고달프고 근심이 마를 날이 없다. 노인이 물욕에 잡히면 탐욕의 노예가 되는 것인데 노후에 탐착하는 것은 불행하게 살게 만든다. 많이 소유했으면 나누고 베풀며 살아야 저승길이 편하다.
편사는 편견과 편향을 의미한다. 중용의 자리에서 어느 한 편으로 치우치는 것으로 독선적이고 성급하며 타협의 여지를 없애는 자세로 호호야가 예사로 앓는 나쁜 병이다. 호호야가 편견에 매몰돼 합리적인 사고를 외면한 채 어느 한 편으로 치우치면 융통성이 없는 쇠고집 때문에 순리를 따르기 어렵고 함께 살기 어렵게 만든다. 호호야의 편향된 사고와 신조는 인문도정에 매우 해롭다.
사람이 지나치게 감각적 쾌락을 좇고, 물질만능적 사고에 빠져 탐욕을 부려 살며, 교만과 독선에 빠져 편견으로 사리를 등지고 불합리하게 치우쳐 행동하면 인륜의 길을 가기 어렵다는 것이다. 인륜의 길을 가지 못하게 방해하거나 가로막는 저 세 가지가 끄는 수레를 타고 사는 인생이라면 그 주인은 인간의 탈을 썼을 뿐 실은 짐승인 것이고 그런 게 판치는 세상은 결코 지상천국이 될 수가 없는 것이다.
한데, 아뿔싸, 지금 숱한 개인이 인륜의 도정에서 일탈해 거들먹거리며 살고 바깥세상에서 휴머니즘이라는 인문주의는 시나브로 말라죽고 있다. 저 짓거리를 어쩔 것인가. 저 날로 늘어나고 득세하고 있는 인문 방해자들을 어찌해야 하는 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세상이 변하는 모습을 보면 인문도정이 어떻게 훼손되고 변질되는지 알 수 있다.
지금 나라 정사는 가벼운 말을 앞세워 짊어진 약속을 수습하려고 뜬구름 잡기 식의 들뜬 논의를 든 데 없이 일으켜 정치를 어지럽게 하고, 국민이 곤궁해진 게 오래 동안 쌓인 폐단 때문임을 알면서도 그 뿌리를 뽑는데 더디며, 천한 자가 귀한 사람을 막무가내로 무시하고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업신여겨 기강이 무너지고 호호야들이 서글퍼 한숨을 물고 산다.
건설도 좋고 국력신장도 필요한데 그에 못지않게 파손되고 왜곡된 인문의 도정을 수리하고 강화하는 역사가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