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어머니!
어머니가 이 세상을 하직하신지도 벌써 만 5년이 되는군요, 어머니 기일인 벚꽃이 만개하던 4월이 오면 이렇게 더욱 그리워집니다.
문득 문득 길을 지날 때나 어두운 밤이 오면, 그리고 즐거운 일이나 기쁜 일이 있을 때 더욱 보고 싶습니다. 평소 잘해드리지 못한 것이 늘 마음에 걸리는군요.
저에게 어머님과 외가는 그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였지요. 지난번 어머님의 고향인 거제도 외포리에 갔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어업에 의해 생계를 꾸려나가는 한적한 포구로서 매년 겨울이면 ‘대구 축제’로 성시를 이루어 예전에 비해 어장의 규모가 상당히 성장하였더군요. 제가 어린 시절 아버님이 늘 원양어선에 승선하여 외국에 있었으므로 언제나 집안에는 어머님과 동생과 함께 우리 셋이서 생활하였지요.
한적한 시골의 추운 겨울밤이면 어머니가 우리들의 양말이나 헤어진 옷에 바느질을 하였지요. 그때 어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서 재미난 얘기를 듣곤 하였는데 기억이 나시는지요, 지금도 어머니의 그 따스한 체온이 느껴지며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의 애틋한 그리움이 사무칩니다.
어머니가 다정다감하게 들려주셨던 외가의 가족사와 주경야독으로 성공한 외삼촌들의 얘기들은 저에게 많은 감명을 주었고 삶의 가치관 확립에 커다란 역할을 하였답니다. 제가 어린 시절 편식이 심하고 유난히 유약하여 병치레를 많이 하였지요.
초등학교 시절 간디스토마에 걸려 사경을 헤매던 때, 어머니가 20리가 넘는 시골 비포장길을 걸으며 저를 등에 업고 왕래하며 간병하여 제 목숨을 살려내셨지요. 그 은혜를 어째 잊을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어머니!
제가 중학 3학년 때 먼 타국으로 원양어선을 타러 가신 아버님의 갑작스런 사망 소식은 얼마나 큰 충격이었을까요.
그로 인해 어머니는 홀로 저희들을 거두시느라 객지생활에서 경제적으로 가난하고 힘든 생활에 부딪히면서 평생을 외롭게 보내셔야 했지요. 그때 저는 학업과 직장생활을 위해 늘 객지에 떨어져 있었으므로 큰 아들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습니다.
한참 후 제가 고향에서 여객선 사업을 시작하여 몇 년을 어머님과 같이 생활하게 되었을 때도 서로 급한 성격으로 인하여 자주 충돌하였지요, 그러나 돌이켜 보면 이때가 저와 어머님이 보낸 가장 행복한 시간들이었던 같습니다.
그 이후 사업이 궤도에 올라 집안의 모든 것이 안정되었을 때 급작스레 찾아온 병환으로 이별을 고하게 되어 너무 가슴 아픕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이 마찬가지이겠으나 어머니는 곧은 생활 관념으로 자식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였지요. 오로지 이 보잘 것 없는 아들에게 모든 희망을 걸고 헌신하며 고달프고 외로운 인생을 살았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고, 무한한 자부심을 갖게 하는 칭찬과 자랑을 아끼지 않으셨지요. 그런 어머니의 깊은 사랑을 이제 더 이상 받을 수 없음에, 슬프고 가슴이 메어지며 날로 그 그리움이 더해갑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영원히 제 영혼에 살아계시며 불멸의 나침반이 되어주고 계십니다. 제가 불효한 기억들은 모두 잊으시고 행복했던 기억들만 간직한 채, 부디 천국에서 그간의 고달픔과 외로움, 그리고 긴 병마에서 벗어나, 이승에서 못 다한 아쉬움을 채워 안락한 영면에 드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