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플 악플 상관없이 여론조작 여부가 업무방해 혐의 핵심”
‘김경수, 불법 알았나’가 공모여부 쟁점… 금전거래도 변수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의원이 포털 댓글 여론조작 의혹을 받는 ‘드루킹’ 김모(48·구속)씨와 연락을 주고받은 정황이 경찰 수사 과정에서 속속 드러나면서 향후 수사와 사법처리 방향에 관심이 쏠린다.
‘드루킹’ 김씨의 일방적 메시지 전송에 가까웠던 것으로 알려졌던 둘 사이의 연락 관계를 달리 판단할 만한 단서들이 속출했다.
김 의원이 드루킹에게 인터넷 기사 주소(URL)를 보내며 홍보를 요청하고 드루킹이 “처리하겠다”고 답한 사실을 경찰이 20일 공개한 것이 대표적이다.
수사가 점차 드루킹 김씨의 여론조작 의혹 사건에 김 의원의 연루 여부를 규명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가면서 여론조작 의혹에는 어떤 위법 요소가 있고, 어디까지가 처벌 범위인지가 향후 사법절차의 쟁점으로 부상할 것으로 전망된다.
표현의 자유인가 불법 여론몰이인가
경찰에 따르면 드루킹은 경찰 조사에서 김 의원이 ULR을 보내자 ‘처리하겠다’고 답했던 이유를 진술했다.
드루킹은 “김 의원이 당시 ‘경제적 공진화 모임’(경공모)이 선플 운동을 하는 것을 알고 있어서, 우리가 선플(긍정적 댓글) 운동을 해줄 것으로 생각하고 전송한 것 같다”고 경찰에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드루킹이 ‘선플 운동’을 언급한 배경에 주목한다.
김 의원이 지정한 인터넷 기사에 긍정적 댓글을 달거나 ‘공감’을 누르는 등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온라인 활동을 했다는 인상을 주려는 진술이 아니냐는 해석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진술은 경공모의 행위가 국민 누구에게나 보장된 표현의 자유 혹은 선거운동의 자유를 행사한 것에 불과하다는 취지로도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선플 운동을 통한 정치 의견 표출과 뉴스 순위 조작 혐의는 구분돼야 한다는 것이 법조계의 중론이다.
서정욱 변호사는 “드루킹이 받는 업무방해 혐의는 악플을 달았다는 게 아니라 네이버의 뉴스 순위를 조작하려 했다는 것”이라며 “선플이든 악플이든 그 내용은 업무방해 혐의의 구성 요건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드루킹이 말한 선플의 의미 역시 불분명하다. 선거 국면에서는 특정 후보에 대한 긍정적 의사 표현은 경쟁 후보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드루킹 일당의 여론 조성 활동 중 타인을 비방한 사실이 있으면 처벌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는 온라인에서 사실을 적시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한다. 허위사실로 인한 명예훼손은 징역 7년 이하까지 형량이 뛴다.
김경수, 매크로 등 불법 정황 알았나가 쟁점
법조계에서는 경찰이 공개한 드루킹과 김 의원 사이의 메시지 교신 내용에 비춰 보면 이들의 지시·보고 관계는 형식상 인정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김 의원을 드루킹의 ‘공범’으로 봐야 하는지를 따지려면 드루킹과 김 의원 등에 대한 추가 수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만약 수사당국이 김 의원을 공모자로 지목하려고 한다면, 댓글을 자동으로 달아주는 ‘매크로’ 프로그램 등 불법 수단을 드루킹이 동원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김 의원이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분석이 법조계에서 제기된다.
김한규 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은 “드루킹이 ‘매크로’를 쓰는 사실을 김 의원이 알았다면 최소한 ‘방조’ 혐의가 인정될 수 있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반면 김 의원으로서는 드루킹에게 기사를 홍보해달라고 했을 뿐, 그가 타인의 아이디를 쓰거나 매크로를 사용하는 등 불법 수단을 동원한 사실은 몰랐다고 반박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 경남도지사 선거 출마를 공식화한 김 의원은 이날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드루킹 관련 의혹에 대해 “도민이 냉정하고 현명하게 판단할 것이다”라며 “조속하게 마무리되면 제가 어떤 과정에서도 추호의 위법이 없었던 사실이 백일하에 밝혀질 것이다”고 말했다.
매크로 사용 여부와 상관없이 드루킹 일당이 댓글작성 매뉴얼 등에 따라 조직적으로 여론조작 행위를 한 점을 김 의원이 알았을 경우에도 공모 혐의가 인정될 수 있다는 해석도 있다.
이와 별도로 드루킹 등에 대한 계좌추적 결과 김 의원이나 주변 인물과의 금전 거래 정황이 나올 경우 김 의원의 주장과 관련 없이 업무방해 공모 혐의가 성립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도 법조계 일각에서 제기된다.
공직선거법 적용 불가능할 듯... 경선 과정서 조작 있다면 업무방해
현재까지 김 의원과 드루킹은 약 3000여건의 대화를 주고받은 것으로 파악된다.
경찰은 이 중 2016년 11월부터 2018년 3월까지 김 의원이 보낸 인터넷 기사 URL 10개 등 14건의 메시지를 추려 공개했다.
10건의 URL 중 4건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된 2017년 3월 10일부터 19대 대선일인 5월 10일 사이에 오간 것이다. 대선을 전후한 드루킹의 여론 조작 행위가 공직선거법에 저촉되는 것인지가 쟁점이 된다.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에서처럼 온라인 여론 조작에 국가기관이 동원된 경우가 아니라 드루킹처럼 민간인 신분으로 온라인 공간에서 의견을 표출하는 행위는 처벌 조항이 없다.
다만 드루킹이 금품이나 이익을 제공받거나 약속받은 상태로 온라인 여론 조작을 했다면 처벌 가능성이 열린다.
공직선거법 제230조 5항은 선거에 영향을 주려고 법에 정하지 않은 방식으로 문자나 음성 등을 인터넷 홈페이지나 대화방 등에 게시하거나 전자우편·문자메시지 등을 전송하게 하고 그 대가로 금품이나 이익을 제공 내지 약속했으면 처벌하도록 규정한다.
하지만 공직선거법의 시효가 6개월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드루킹 등의 활동이 불법이었다 해도 처벌은 불가능하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드루킹 일당의 행위가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활동에서 더 나아가 대선 후보 경선을 위한 모바일·인터넷 투표에까지 영향을 미치려했다면 정당의 업무를 방해한 혐의도 성립할 수 있다는 의견이 있다. 업무방해죄의 공소시효는 7년이다.
이계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