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6년 4월 28일. 서울 서대문 밖 모화관 터(지금의 독립문 자리)에서 미국인들이 군인 팀과 민간인 팀으로 나뉘어 야구시합을 벌였다.
당시 국내에서 발간되던 영자신문 ‘인디펜던트’가 기록한 국내 최초의 공식 야구경기 기록이다.
이렇게 우리나라에 들어온 야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국적으로 전파됐고, 서울에선 학교와 단체를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서울역사편찬원은 1876년 개항 이후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서울 야구의 역사를 담은 ‘서울의 야구’를 발간했다고 20일 밝혔다.
책자에는 개항기,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 잠실야구장 개장 이후로 시기를 나눠 서울 야구의 역사를 담았다.
개항 이후 미국인에게 야구를 배운 서울 야구팀들은 일본 구단과 대결을 펼치면서 실력을 쌓아나갔다.
해방 이후에는 ‘조미친선야구대회’를 시작으로 청룡기 대회의 기원인 ‘전국 중등학교 야구선수권대회’, 황금사자기의 기원인 ‘전국 지구대표 중등학교 야구쟁패전’ 등 다양한 대회가 생겼다.
1958년 10월에는 미국 메이저리그 전통의 강팀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가 주전 멤버들을 이끌고 방한해 서울팀과 경기를 펼치기도 했다. 이 경기에선 이승만 전 대통령이 시구했다.
이날 경기에선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가 0 대3으로 승리했지만, 서울팀 에이스 김양중이 전설적 삼루수 켄 보이어와 메이저리그 스타였던 스탠 뮤지얼을 삼진으로 잡는 이변을 연출하기도 했다.
6·25 전쟁으로 주춤했던 야구 열기는 육군·공군·해군 야구단을 중심으로 다시 살아나게 된다. 서울 고교 야구는 1960년대 전성기를 맞았으며 1982년엔 프로야구 시대가 열렸다.
‘서울의 야구’는 서울시 내 도서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서울역사편찬원 홈페이지(history.seoul.go.kr)에선 이북(e-book)으로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