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아버지께서 하늘나라로 가신지도 13년이 지났네요.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어머니를 자주 찾아뵙지 못하고 이렇게 글로만 안부를 묻습니다.
늘 가슴 한 구석에서 시도 때도 없이 “엄마”라는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저미도록 아픈 이유는 뭘까요?
1986년 9월 28일 일요일, 그날!
어머니가 사고로 오른 손목을 잃어버리던 날, 추석이 막 지난 주라 자취방에서 한가로운 휴일을 보내고 있었지요.
그날.
자취집 주인 아줌마가
“조선생 전화왔데이~ 빨리 전화 받아봐라. 뭐 급한갑따”
“여보세요”
“둘연이 맞나? 내 이장이데이. 큰일났데이. 너거 엄마가 전기 작두에 손이 짤려가꼬 지금 병원으로 택시타고 갔데이. 너거 형제들 빨리 소집해서 동마산 병원으로 가그래이.”
“여... 여보세요. 무슨 말씀입니꺼?”
전화는 끊어졌지요.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언니들과 병원 응급실 앞에서 얼마나 기다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택시 한 대가 섰고, 피를 얼마나 흘렸는지 온 몸이 피투성이인 어머니는 이미 의식이 없었습니다.
아버지 등에 업혀서 응급실로 향하는 어머니의 오른손은 수건으로 칭칭 감겨 있어도 이미 잘려나간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랬습니다. 가난한 농부의 아내로 1초도 안 쉬고 일만 하셨던 나의 어머니.
육 남매 공부 시키느라 돈 되는 일이라면 밤에도 눈에 불을 켜고 일을 하셨던 나의 어머니.
소가 재산이었던 시절, 나도 학교에 갔다 오면 늘 소꼴을 베었고 산이며 들로 소를 먹이러 다녔지요.
그날, 오랫동안 키우던 소를 파셨고 송아지와 헤어지기 싫어서 눈물을 글썽글썽 흘리며 팔려가던 소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판 소의 새끼에게 꼴이라도 먹이시겠다고 산에서 칡넝쿨과 맛있는 소꼴들을 전기 작두에 넣으시다가 손이 딸려 들어가 버린 것이었지요.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제발... 하나님 우리 엄마를 제발 살려 주세요.”
긴 시간이 흘렀고 수술은 끝났습니다. 어머니의 오른손은 손목만 남기고 사라져 버렸습니다.
손 하나를 잃으신 어머니가 입원실에서 의식이 돌아오자 우리들은 소리 내어 울었고, 우는 소리에 어머니는 “시끄럽다. 아파 죽겄다. 두 손 다 딸려갔으면 우짤 뻔 했노. 한 손이라도 남아 있으니 다행이다 아이가.” 라고 하신 말씀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33년 전, 어머니는 그렇게 장애인이 되셨지요. 손 하나 없이, 33년을 농사를 지으시면서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어머니는 늘 말씀하셨습니다.
“야야, 손이 없는데도 와 손끝이 이래 아플꼬?” 아마도 그 고통을 우리는 아무도 이해 못할 것입니다.
지난 해, 어머니가 팔순을 맞으셨지요.
“나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 내 새끼들 건강하고 행복하면 되니까 나에게 뭘 해 줄 생각 하지말고 같이 여행이나 가자” 라고 하셔서 조촐하게 가족 여행을 다녀왔지요.
어머니, 내 사랑하는 어머니가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존경스럽습니다.
딸 다섯, 아들 하나. 다들 멋지게 성장시켰고 아직도 농사를 지으시는 어머니.
“이제 좀 그만하세요. 힘드시잖아요.”
“아니다. 아직은 개안타. 내가 째끔만 꼬물거리모 내 새끼들 입에 진짜 먹이는데... 내는 안 힘들다.” 하시며 김치며 간장, 된장, 참기름, 고춧가루 등등 모든 것을 어머니가 보자기 보자기 챙겨서 자식들 집으로 보내 주시지요.
저는 생각해 봅니다. 어머니처럼 살 수 있을까요. 자식을 위해서 100% 희생하신 우리 어머니, 어떡하면 그 사랑에 조금이라도 보답할 수 있을까요.
어머니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당신의 딸로 살아가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저도 어머니처럼 살아갈게요. 말로는 더 이상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어머니,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제 곁에 있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