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일을 좋아하며 일에서만 보람을 느끼시는 줄만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좋아하시는 운동도 취미도 없으신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 외에 아는 여자가 한 사람도 없으신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주머니에 늘 비상금이 얼마쯤 있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바위 같아서 흔들림도 두려움도 없으신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여간한 일엔 끄덕도 않고 대범하신 줄만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용감하여 위험한 일도 망설이지 않으신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딸이 시집가는 것을 보고 마냥 기뻐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우리가 하는 말을 귀담아 들으시지 않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무뚝뚝하여 눈물 같은 것은 모르시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다정다감하시면서도 근엄하고 의연한 척 하신 것 같습니다.’
수필가 ‘임종호’님의 글이다.
우리들의 아버지를 어찌 몇 줄의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마는 임종호님의 ‘아버지’는 현대를 살아가는 자녀들에게 많은 시사점과 교훈이 담겨 있다.
산업?정보화 사회로 이전되면서 우리들의 아버지는 전후좌우 살필 겨를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다. 가정은 있어도 가족은 없는 것처럼 달리고 또 달려왔다.
그 덕에 우리나라의 경제는 괄목상대(刮目相對)할 만큼 발전했다.
우리도 놀라고 세계도 놀라고 있다.
우리 국민 모두의 노력이라지만 그 중심에는 우리들의 아버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우리들의 아버지들이 왜소(矮小)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집안과 밖에서 아버지들의 목소리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집안에서도 아버지의 권위 있는 명령이나 지시가 자취를 감추게 됐다. 가부장(家父長)이란 말은 권위주의적 상징으로 치부 됐다.
그리고 우리들의 아버지가 무슨 잘못 무슨 죄를 많이 졌다고, 잘못된 것은 모두 ‘아버지가, 아버지가’하며 아버지를 탓하기도 하고 원망하기도 한다.
아버지들이 거리로 내쫓기다시피 되어 노숙을 하기도 하고 가족들에게 소외되어 대화의 상대조차 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면서 아버지가 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우리들의 아버지가 ‘제자리’에 있도록 가족공동체들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
울고 싶어도 울 곳조차 없는 우리들의 아버지들이다. 밖에서 바쁜 아버지, 가족을 책임지고 사회의 발전의 원동력으로의 아버지를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아버지도 위로받고 싶을 때가 있고 아버지도 칭찬받고 싶을 때도 있다.
아버지는 전지전능한 존재도 아니고 그리 힘이 있는 존재도 아니다.
약하면서도 강한 체하기도 하고 없으면서도 있는 체 하기도 하는 극히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존재이다.
아버지들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