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청춘, 액티브 시니어 칼럼 - 이형종(한국액티브시니어협회 시니어 연구소장, 본지 객원기자)
필자의 지인 A씨는 은행에서 퇴직 후 1년 동안 심리적 갈등을 겪었다. 퇴직충격에서 벗어난 후에 낚시를 다니면서 또 1년을 보냈다. 그래도 마음의 공허함을 메울 수 없었다.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막막하게 느끼며 한 동안 방황하였다.
최근에야 다른 선배들의 소개로 한 대학의 평생교육원에서 수강을 하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새로운 역할을 찾아 나섰다.
지금 A씨처럼 퇴직으로 인한 상실감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많다. 지나 버린 과거에 집착하며 장래의 가능성을 보지 못하고 있다.
명함이 있는 노후
필자는 이러한 사람들에게 ‘명함이 있는 노후(김현기, 교보문고)’라는 책을 추천하고 싶다. 저자는 장수시대에 길어지는 인생에서 퇴직 후에 사회적 역할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퇴직 후 직장과 소득이 없어도 자신에게 의미 있는 일을 찾아 명함에 표현하면 풍요로운 인생을 가꿀 수 있다는 것이다.
명함은 단순한 종이 한 조각이 아니다. 나의 삶의 방식을 표현하는 매체이다. 명함에는 이름, 근무처, 소속부서, 직책, 연락처 등 자신을 대표하는 최소한의 정보가 담겨 있다.
대인관계에서 작은 종이 조각을 교환하면서 서로의 사회적 위치, 관계를 파악하면서 커뮤니케이션을 시작한다. 그러나 퇴직 후에는 그 한 장의 종이도 없어진다. 명함 한 장 없으면 만남에서 대화의 실마리를 찾기 어렵다.
퇴직 후 갈 곳, 할 일을 찾지 못하면 방황과 불안 속에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막막하다.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 이러한 질문을 반복하면서 자신의 삶을 들여다 본다. 현역시절에 일은 사회적 지위와 역할, 자기의 존재를 나타내는 상징이었다. 일을 떠나서는 나의 존재가치를 찾을 길이 없다.
회사와 일은 자기 정체성의 상징이었다. 어떤 학자는 퇴직을 자기 정체성의 상실로 인한 사회적 죽음으로 표현하였다.
퇴직 후 일에서 해방되면 자기 정체성을 어디에서 찾으면 좋을까?
일 이상으로 적극적인 여가활동도 자기 정체성의 일부이다. 최근 다양한 여가활동을 통해 자신의 가능성을 넓히고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려는 사람이 많다. 그들은 현역시절에 직장에서 실현하지 못한 자신의 꿈을 이루고 싶어한다. 현역시절의 취미와 특기를 살려 스스로 일을 만들어 간다.
자기다운 인생을 살 수 있는 기회 - 퇴직
퇴직이란 사회에서 퇴출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일을 통해 구축된 사회관계를 이제 한 개인으로서 재구축하고 자기다운 인생을 살 수 있는 기회이다.
현역시절에는 회사와 상사가 일을 주었다면 이제는 스스로 사회에서 새로운 역할을 찾아야 한다. 일을 지시하는 상사와 동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까지의 인간간계를 바탕으로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의무가 아닌 자발적인 일은 그 자체가 자기목적적이고 수단이 되지 않는다. 자율적인 노동은 무료함을 달래주고, 심신 건강유지에 효과적이다.
최근 시니어의 컴퓨터 강좌 프로그램에 ‘두 번째 명함 만들기’는 단골 메뉴이고 인기도 많다. 이 강좌에 참여하는 시니어들은 작은 네모 종이에 자신의 소중한 꿈과 목표를 적어보면서 삶의 가치를 느낀다. 두 번째 명함을 만들면서 자신의 숨겨진 재능과 기술에 눈을 뜨게 된다.
작은 두 번째 명함에서 장래의 희망을 발견한다. 시니어들이 두 번째 명함을 자율적으로 만들 수 있도록 사회적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다.
저출산 고령사회에서 시니어의 역할은 점점 커지고 있다.
장수사회에서 퇴직 후 길어지는 후반기에는 명함 없이 사는 기나긴 인생이 펼쳐지고 있다. 현역시절에 회사의 실적을 높이기 위해 살았다면 이제 사회를 위해 자신을 살려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누구나 두 번째 명함을 새기면서 새로운 희망을 갖고 당당하게 미래를 설계하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