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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어보는 소설 ‘대망(大望)’

청와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소설 대망의 한 구절이다… “적장의 말을 믿는 자는 죽어 마땅하다”
한반도 정세가 급격하게 돌아가고 있다.

이런 시국을 겪으면서 일본의 유명 대하소설 ‘대망(大望)’이 생각난다.

1600년 9월 15일, 일본 세끼하라에서는  천하의 주인을 가리는 한 전투가 벌어졌다. 이 전투에서 승리한 도쿠가와 이에야스 막부는 제일 실권자로 부상한 반면에 도요토미 히데요리(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아들 일가는 점차 영향력을 잃어 가게 되는 계기가 되었지만 두 가문의 대결은 여전했다.

그러던 중 도요토미 가문이 재건한 교토의 한 대불전의 범종 명문을 문제 삼으면서 양측 갈등은 결국 오사카 전투로 이어졌다.

막강한 유산을 배경으로 한 히데요리의 10만 낭인(浪人)병력과 이에야스의 20만 대군 양 세력 간의 대접전이었다.

이에야스의 막부군은 수차례 공격을 시도했지만 히데요리의 오사카성은 철옹성이었다. 바다와 강을 낀 천연요새에다 성 안팎에 이중의 깊은 해자(구덩이, 연못) 장애물도 있었다. 

전투가 길어지고 겨울이 다가오면서 이에야스 측은 병력 손실과 사기저하로 점점 전의를 상실 해 갔고 히데요리 측도 농성(籠城,성지키기)으로 인한 화약부족과 심리적 위축으로 지쳐 있었다.

이에 이에야스는 강화교섭을 진행함과 동시에 성내 건물들을 계속 포격함으로서 협상의 우위를 유지해 갔다.

결국 1614년 11월 20일 정전 합의서가 서명교환 되면서 일단 전투는 종결되었다. 강화조건을 보면, 하데요리 측은 - 본 성 이 외의 성과 바깥 해자를 철거 매립하고 그의 생모(요도도노) 인질 대신 그의 중신을 인질로 보내고, 이에야스측은 - 히데요리의 신변 안전과 영지를 보장하고 성중의 그 누구에게도 죄를 묻지 않는다 고 되어 있었다.

강화조건으로 성곽의 해체 요구는 당시에는 보편적이고 의례적인 것이었다. 현대에 와서 방어진지 철거, 병력 감축 및 상호 무장해제와도 비슷했다.

성벽철거와 해자매립은 수비 측의 자진공사 가 당연시 되었지만 이에야스는 공사를 도와준다는 구실 하에 자기 부하들을 참여 시켜서 해체와 매립을 확실하게 하는 주도면밀함을 발휘 했다. 그러면서도 이에야스는 뒤로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있었고 히데요리 측에서도 고용된 낭인들의 무장해제나 해고도 하지 않은 채로 양측의 긴장은 여전히 이어졌었다.

결국 이듬 해 4월 히데요리 측이 교토 일대에서 약탈과 방화를 저지르는 사건이 발생하자, 이 사건을 빌미로 5월 초 이에야스는 오사카성을 다시 공격했다. 

이 번에는 성곽과 해자도 없는 문이 활짝 열려 있는 오사카성 공격은 식은 죽 먹기, 파죽지세로 3일 만인 5월 7일 성을 함락 입성했다.

히데요리는 모친과 자결 했고 그의 가문은 아이들까지 씨를 말리는 멸문을 당했다. 백성들도 학살당했고 하데요리의 충신들 장수 부하들까지 전부다 목이 날아갔다.

이에야스는 화친조약을 휴지조각처럼 여겼던 것이다.  약속을 어긴 비겁자라는 비난에 이에야스는 ‘적장의 말을 믿는 자는 죽어 마땅하다’고 당당히 답했다. 성벽을 철거하고 해자를 메우도록 명하는 천하의 어리석은 군주를 모시고, 그의 명령을 막지 못한 자들도 모두 도륙 당해야 마땅하다는 뜻이었다.

전쟁은 이기는 자의 몫이다. 승리만 하면 모든 수단과 과정도 합리화 되고 정당화 될 수 있다.의리와 신의는 결코 승리에 우선 할 수가 없다. 전쟁에 패하면 곧 죽음인데 의리와 신의가 다시 살려 줄 리가 있겠는가. 

남북 협상이 진행 중인 요즘, 이 소설을 회상해 보면 많은 생각이 든다.

적의 화해 손짓에 스스로 진지를 해체하고 무기를 서둘러 버리지나 않을는지. 그렇게 된다면 청와대 사람들은 물론 우리 국민들도 대량 살육 대상이 되고 말 것이다. 벌써 군대 안 가도 되느냐는 철없는 젊은이들의 문의가 폭주하고 있다고 한다. 국방의식이 벌써 와해되고 있다는 섬찟한 느낌마저 든다. 

우리는  베트남과 미국의 파리 평화협상에서 많은 교훈을 얻었다.

지금까지 수차례 남북회담, 선언 등을 통해서 북측은 시간을 벌며 뒤로는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도발은  물론, 핵 개발이 라는 비수를 갈고 있었음을 알게 됐다. 속은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또 다시 미소 지으며 화해 손짓을 보내고 있다. 핵을 포기하겠단다.

늑대 소년의 우화가 생각나는 시절이다.

이제 평화의 시대가 왔다고 환호하며 들떠 있는 일부 국민들에게 이 소설 속 오사카 전투의 교훈을 꼭 들려주고 싶다.

다시 묻거니와, 김정남을 독살한 자는 누구인가?

장성택을 처형한 자는 누구인가?

우리 연평도에 포격을 가해 우리 국민들을 죽게 한 자는 누구인가?

천안함을 폭침해 우리 젊은 장병들을 앗아간 자는 누구인가?

밤잠 못자고 애쓰는 청와대 사람들에게 권하는 커피 치고는 너무 쓴맛이라 미안한 감이 없지 않다.

 

최중탁(본사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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