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출범 1년을 맞은 한국 경제는 3년 만에 3%대 성장궤도에 복귀해 사상 처음으로 1인당 국민소득(GNI) 3만 달러 돌파를 앞두고 있다. 지표상으로는 낙관적으로 볼 수도 있는 수치다.
그러나 실제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경제는 이와는 동떨어져있다.
남북회담, 북미회담 등 정치가 승승장구하는 것에 비해 한국 경제의 미래는 낙관적이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재난 수준의 고용위기 여전
지난 8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지난해 우리 경제는 3.1% 성장해 3년 만에 3%대 성장세로 올라섰다.
이같이 거시지표 면에서 선방한 정부의 아킬레스건은 고용이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주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가장 신경이 쓰이는 것은 고용”이라며 “올해 1분기 생산가능인구 감소세가 가시화되면서 고용부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정부가 받아든 고용 성적표는 최악이다. 재난 수준이라고 자인할 정도다.
지난해 실업자는 약 103만 명, 청년층(15∼29세) 실업률은 9.9%로 현재 기준으로 측정한 2000년 이래 각각 최고치를 기록했다. 올해 들어서도 2월과 3월 취업자 수는 2개월 연속 10만 명 대 증가에 그쳤다.
정부는 지난해 역대 최대인 18조285억 원의 예산을 일자리사업에 쏟아부었고, 올해는 12.6% 늘어난 19조2312억 원을 편성했지만 좀처럼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LG경제연구원 이근태 수석연구위원은 “고용부진은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고 고령화 효과가 본격화하면서 잠재성장률이 떨어지는 구조적 요인 때문”이라며 “소득주도성장으로 내수 수요를 확대하되 늘어난 수요가 국내 생산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서비스산업의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물가상승률
정부는 올해부터 시간당 최저임금을 7530원으로 16.4% 인상해 17년 만에 최대폭으로 끌어올렸다. 제조업과 도소매업의 임시·일용직 감소세는 1년 전과 큰 차이가 없었지만, ‘서민 자영업’으로 꼽히는 숙박·음식업의 감소 폭이 약 2만 명 확대됐다.
물가상승률도 심상치 않다. 농산물 가격은 작년 8월 16.2% 뛴 이래 8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특히 채소가 많이 올랐다.
신선 채소가격은 8.5% 상승해 작년 8월 22.8% 이후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다. 감자 가격은 76.9%나 치솟았다. 2004년 3월 85.8%에 이어 약 14년 만에 가장 큰 폭이다.
쌀(30.2%), 고춧가루(43.1%), 무(41.9%), 호박(44.0%) 등 생활과 밀접한 농산물 가격도 줄줄이 올랐다.
올해 들어 최저임금이 16.4% 오른 가운데 공동주택 관리비(6.8%), 가사도우미료(10.8%) 등 인건비 비중이 큰 서비스물가 상승이 확연했다.
석유류 가격은 3.8%, 수산물 가격은 5.0% 올랐다. 체감물가를 보여주는 ‘생활물가지수’는 1년 전보다 1.4% 상승했다. 이는 자주 구입하고 지출 비중이 큰 약 140개 품목을 토대로 작성한 것이다.
강남 4구 아파트값 1년 전 대비 12%↑
강남 4구 아파트 매매가격은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난해 5월 셋째 주와 비교해보면 12.05% 치솟았다.
문재인 정부는 취임 이후 다주택자의 투기수요를 겨냥해 ‘주택시장의 안정적 관리를 위한 선별적 맞춤형 대응방안’(6·19 대책)과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8·2대책)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서울과 과천, 세종시 등 집값이 단기적으로 급등한 지역을 위주로 다주택자의 돈줄을 조였다.
하지만 고가의 1주택을 의미하는 ‘똘똘한 1채’로 갈아타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강남아파트 매매가격은 재건축 아파트 위주로 작년 12월 이후 올해 들어서까지 급등했다.
여기에 미국의 대(對)이란 제재가 부활할 것이란 우려 속에 국제유가가 배럴당 80달러를 향해 치닫고 있다. 이러한 추세로는 내년 배럴당 100달러를 찍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우리나라가 주로 수입하는 두바이유 가격도 전날보다 배럴당 1.45달러 상승한 73.93달러에 마감됐다.
원유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경제에 또 하나의 악재가 추가된 셈이다.
또한 최근 한국은행, 고용노동부, 통계청 자료를 토대로 분석해보면 지난해 임금 근로자의 실질구매력 증가율이 반토막이 되며 6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실질임금 상승이 0.8%에 그치고 임금 근로자 증가율이 외환위기 이후 가장 낮았던 결과로 분석된다.
실질임금은 근로자들이 손에 쥐는 명목임금에 물가상승분을 반영한 급여 수준이다.
실질임금 상승률은 2011년(-2.9%) 이후 가장 낮았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노동 비용이 상승하다 보니 기업들이 추가 고용을 하지 않는 상황”이라며 “고용시장 부진이 지속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소비는 당분간 좋아지기 어렵다”고 밝혔다.
강현주 기자begainwh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