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겨울이 코앞에 와 있던 하순경, 경기도 이천 소재 S퍼블릭 골프장에서 실제 있었던 잔잔하면서도 흐뭇한 감동을 주는 실화다.
서울 K고등학교 출신 동창들인 4명의 골프광들은 그 날도 팽팽한 긴장 속에 2만 원짜리 홀 매치(홀 빼먹기 : 시작 전 돈을 거둬 놓고 각 홀에서 가장 잘 친 사람이 2만원씩을 가져가는)내기 골프에 여념이 없었다.
홀이 지날수록 분위기는 살벌해졌고 심각해져 갔다. 비슷비슷한 실력이다 보니 승부가 안 나고 다음 홀로 넘어가며 홀 당 금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살얼음 판 같아서 잔기침 하나로도 대판 싸움으로까지 폭발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
이때 한 친구가 용기를 내어 제안했다.
“야, 이거 너무 살벌해 졌다. 이러다간 친구 간에 의절하겠어. 이렇게 칠게 아니라, 우리 비기면 상금은 캐디에게 팁이나 저 그린에서 보수 작업 중인 할머니에게 자선하고 인심이나 쓰자.”
다들 어리둥절했었지만, 결국 좋은 아이디어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사실 몇 푼 따 봐야 끝나고 승자가 밥을 사면 그 돈 이상으로 들어가게 마련이다.
그 때부터 비긴 모든 홀의 상금은 캐디에게 (물론 캐디피 12 만원과는 별도로) 또는 그린에서 볼 자국 보수 작업 중인 할머니들 (통상 이모라고 부른다)에게 반찬값 하라고 나눠주었다. 돈 4~6만원은 이런 할머니들 에게는 결코 작은 돈이 아니라 횡재 수준일 수도 있다. 평생 이런 손님을 만나 본 적도 없었을 것이다.
실제 골프장에서 이런 소외 계층의 일용 잡부들에게 수고 한다고 만 원짜리 한 장 쥐어 주는 골퍼는 결코 없다.
되레 잘 맞으면 내 탓, 안 맞으면 캐디 탓하며 달달 볶거나 캐디에게 폭언이나 희롱성 농담을 거는 경우도 있다.
특히 티샷을 하려는데 그린 보수 이모가 신속하게 작업을 중단하고 대피를 해 주지 않으면 별별 막말에 상스런 소리까지 퍼붓기도 한다. 내기로 다들 신경이 날카로워진 탓이다. 그날 수시로 오토바이를 타고 순찰하며 그린 보수작업을 감독하러 오는 그린 키퍼(그린 관리인)가 이 미담을 이모로부터 전해 들었던 것 같다.
별 손님 다 있네 하고 단순히 의외로만 여기려 했었으나 잔잔한 감동과 고마움이 그의 마음을 움직이게 되었던 것 같다.
그린 키퍼가 몇 홀 앞에서 부터 그린 홀컵(퍼터로 공을 쳐서 넣을 구멍) 위치를 가장 치기 쉬운 곳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사용하던 화이트 팅라운드(그 홀에서 첫 번째 공을 치는 구역)도 한 단계 앞으로 옮겨 꼽아 주었다. 코스 거리가 짧아지게 조정한 것.
홀컵 위치에 따라 코스 난이도는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솥뚜껑처럼 생긴 위치 정점에 꼽으면 퍼팅이 몹시 어려워져서 점수에 큰 영향을 준다.
손님을 골탕 먹일 수도 있고 치기 쉽게 만들 수도 있다. 여러 가지 사정을 고려하여 위치를 이리저리 옮길 수 있는 것은 그린 키퍼의 재량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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