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14년(553) 진흥왕은 왕성인 월성(月城) 동북쪽에 늪지를 매립해 새로운 궁궐을 짓고자 했다. 그런데 황룡이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궁궐 대신 사찰을 조성해 황룡사(皇龍寺)라고 명명했다.
황룡사는 명실공히 신라 최고 사찰이었다. 신라 3대 보물 중 진평왕 천사옥대(天賜玉帶) 외에 장육존상(丈六尊像)과 구층목탑이 황룡사에 있었다. 화성(畵聖) 솔거가 그린 금당 벽화와 성덕대왕신종보다 더 큰 범종이 존재했다고도 전한다. 하지만 고려 고종 25년(1238) 몽고군이 침입하면서 모든 건물이 불타 사라졌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황룡사터에서 1976년부터 1983년까지 발굴조사를 진행해 유물 4만여 점을 찾아냈다. 정비된 황룡사터를 거닐면 남아 있는 건물터 유적만으로도 위세를 느낄 수 있다.
황룡사터에서 남쪽으로 500m 남짓 거리에 있는 국립경주박물관은 특별전 ‘황룡사’를 25일 개막한다. 100여 점을 황룡사실에서 상설 전시하던 박물관이 유물 685점을 한꺼번에 선보이는 첫 황룡사 기획전이다.
신라 경문왕이 872년 구층목탑을 수리하고 경위를 기록한 금동찰주본기(보물 제1870호)를 비롯해 높이가 1.82m에 이르는 대형 장식기와인 치미, 중화 3년(883)명 사리기 같은 귀중한 유물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전시는 신라 사찰 중 정점에 있던 황룡사를 개괄적으로 소개하는 1부 '궁궐에 나타난 황룡'으로 시작한다.
이어 2부와 3부는 신라삼보(新羅三寶) 중 두 가지인 구층목탑과 장육존상을 각각 호국의 상징과 신비의 상징이라는 관점에서 조명한다.
선덕여왕 12년(643) 자장이 권유해 백제 장인 아비지가 세웠다고 하는 황룡사 구층목탑은 당시 신라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다. 전시실에는 구층목탑 관련 유물로 금동찰주본기와 심초석에서 나온 사리기, 공양물이 공개된다.
높이가 4.5∼5m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장육존상은 황룡사 세 금당 중 중금당에 있었다. 장육존상 머리 일부와 동금당 주존불로 짐작되는 소조불 손가락이 관람객을 맞는다.
마지막 4부 ‘가람의 일상’에서는 기와와 토기, 자기, 금속품으로 황룡사에서 생활한 승려의 삶을 유추한다. 높이 85㎝ 항아리, 길이 30㎝ 대형 쇠못, 다채로운 문양이 있는 수막새로 전시장을 꾸몄다.
이번 전시에서는 유물 뿐만 아니라 양정석 수원대 교수팀이 컴퓨터그래픽으로 제작한 구층목탑과 금당 영상물도 감상할 수 있다. 드론으로 촬영한 황룡사터 고화질 영상도 선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