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청춘, 액티브 시니어 칼럼
이형종 박사(한국액티브시니어협회 시니어 연구소장, 본지 객원기자)
대기업 퇴직자들은 주로 중소기업에 재취업한다. 50대 중반의 이성진씨도 중소기업에서 재취업 자리를 찾고 있다. 그러나 임금과 복리혜택 등 근로조건이 매우 열악하여 선뜻 선택하기가 어렵다. 근로조건을 받아들이더라도 업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구인기업은 단순한 현장영업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20년간 해외 현지법인의 업무경력은 재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소연한다.
실제로 시니어들의 재취업 일자리는 매우 열악한 수준이다. 시니어 재취업 일자리는 경비, 택배, 숙박업 등 단순 서비스와 노무직에 한정되어 있다. 시니어들의 고도의 전문기술과 능력을 활용하려는 중소기업도 매우 적다. 매년 풍부한 경험자산이 사장되고 있다. 퇴직 후에 내가 가진 능력을 마음껏 펼쳐보고 싶은 사람이 많다.
어쩌면 우리 사회는 원치 않는 일을 선택하는 시니어들의 현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니어들의 진정한 욕구에 귀를 기울일 때가 되었다.
미, 시니어 경험자산 사회적으로 활용
한국과 달리 시니어의 경험 자산을 사회적으로 활용하는 혁신적인 단체가 있다. 미국의 비영리단체인 시빅벤처스이다. 시니어 인재의 경험을 활용하여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는 혁신적인 조직이다. 실리콘 밸리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은 시니어들이 퇴직 후 유망한 중소벤처기업에서 일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의미 있는 일을 통해 활동적이고 도전적인 커리어를 추구하는 시니어들의 삶의 욕구를 반영한 것이다.
일본에는 시니어의 중소기업 재취업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모으고 있다. 전문 분야에서 풍부한 경험과 능력을 가진 시니어가 중소기업에서 활약하도록 돕는 프로그램이다. 동경업무재단(공익재단)이 운영하는 ‘시니어 중소기업지원 인재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을 이수한 시니어들의 취업률은 70% 정도로 매우 높다. 15일에 걸쳐 진행되는 프로그램은 개강 전 면담과 선발, 취업활동 진도관리와 강의 등 세밀한 지원체제로 구성되어 있다. 단순히 생계대책으로서 취업할 회사를 결정하도록 유도하지 않는다. 시니어들이 재취업 중소기업에서 충분히 일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는지를 판단한다. 급여수준, 회사의 인지도나 이미지보다 업무량, 가족과 지역, 사회참여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하여 회사를 선택하도록 지원한다.
지금까지 중소기업은 국가경쟁력의 원천이었다. 중소기업은 고도 성장시기에 고도의 기술과 기능을 통해 대기업을 지원하며 경제와 산업, 사회를 지탱해왔다. 그러나 최근 중소기업의 위상과 이미지는 크게 하락하고 있다. 대기업에 비해 고용의 질이 떨어지고, 임금수준도 크게 낮다. 한편 취업자들에게 기술력이 좋고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의 선호도는 높다. 따라서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높인다면 수익성이 커지고 근로환경도 개선되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
시니어 인력은 인재부족 고민에 빠진 중소기업에게 대안이 된다. 사업이 성장하면 조직규모가 커지기 마련이다. 인사제도도 기업규모에 맞춰 다시 만들어야 한다. 해외에 진출한다면 현지기업과 제휴하거나 교섭해야 한다. 이를 위해 마케팅과 영업, 공장관리, 재무, 인사관리 등의 각 분야에 정통한 인재가 필요하다. 대기업에서 충분한 경험과 지식으로 실행력을 갖춘 시니어 인재들이 주목 받는 이유이다. 그럼에도 시니어의 기술과 재능을 활용하는 기업은 매우 적다. 시니어 인재에 대한 고정관점이나 편견이 문제다. 그들의 전문성과 기술력도 높게 평가하지 않고 있다.
사실, 대기업 출신의 시니어들 중에는 베테랑들이 매우 많다. 중소기업에서 즉시 활용할 수 있는 신규시장 개척능력, 조직 관리 노하우, 폭넓은 인맥을 보유하고 있다. 젊은 인재를 뽑아 육성하는 것보다 경영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다. 대기업에서 쌓은 수많은 경험을 새로운 중소기업에 결합한다면 중소기업의 혁신을 가져올 수 있다. 경제학자 슘페터는 이노베이션이란 생산요소를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어떤 분야의 기술과 지식을 다른 분야에 적용하여 수많은 이노베이션이 탄생하였다. 예를 들어 스웨덴 테니스 선수인 비욘 보르그 선수는 톱 스핀으로 세계를 정복했다. 보르그 선수는 탁수 선수였던 부모를 보고 주차장에서 벽치기 연습을 통해 탁구의 강렬한 스핀을 테니스에 활용하는 기술을 마스터했다. 또한 인간의 뇌는 30세를 넘으면 관련성이 없어 보이는 것도 이전에 학습한 것과 유사한 패턴을 느끼는 연계발견 능력이 비약적으로 높아진다고 한다. 시니어들은 지금까지의 경험을 다른 장소에서 활용하는 연계 발견형의 혁신자가 될 수 있다.
시니어 인력 중소기업 연계하는 인력매칭 시스템 구축해야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것은 단순히 생계유지 이상의 의미가 있다. 대기업에서 할 수 없었던 일을 중소기업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많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재직 중에 가능성이 풍부한 사업을 구상해도 대기업에서는 일정 규모의 시장이 아니라면 진입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틈새시장을 노리는 중소기업이라면 충분히 진입할 수 있는 영역이다. 단기적으로 확실한 성과를 내는 오너 사장의 중소기업에서는 장기적인 사업을 지속할 수 있다. 의사결정이 분산되고 정보가 희석되는 대기업과 다르다. 또한 중소기업에서는 개인의 능력을 바로 살릴 수 있다. 능력을 인정받으면서 생계유지 차원을 넘어 순수한 일로서 재미있게 오랫동안 일할 수 있다.
현재 대부분의 시니어들은 중소기업에 재취업하고 있다. 현역시절의 인맥을 활용하여 혼자 힘으로 재취업하는 경우가 많다. 소수의 대기업과 공기업 출신 퇴직자들은 민간 전직지원회사와 공적 기관에서 재취업 알선 서비스를 받고 있다. 시니어 인력을 중소기업 일자리로 연계하는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인력매칭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제는 단순히 노인 일자리를 늘리는 개념으로 접근해서는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다. 시니어 인력의 가치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고 새롭게 정의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