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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감성 풋풋’… 작가 데뷔한 순천 할머니들

남해의 봄날과 ‘그려보니 솔찬히 좋구만’ 출판 계약
6월 1일 전남 순천시청에서 열린 할머니들의 출판기념식 모습.
“늘 히죽히죽 웃고 다닌다고 아버지에게 야단을 맞으며 자랐습니다.” (78세 김영분 할머니)

“구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초등학생이 되어 날마다 숙제하고 구구단을 외우느라 바쁩니다.”(86세 양순례 할머니)

1일 오후 전남 순천시청에서는 특별한 출판 계약식이 열렸습니다.

지난해 순천시립그림책도서관에서 글과 그림을 배운 할머니 20명이 출판사 남해의 봄날과 출판 계약을 한 것입니다. 이름 석 자 쓰고 싶어서 시작한 글공부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했고 전문작가와 함께 그린 그림은 소녀 시절 감성을 되살리게 했습니다.

평소에 사진으로만 바라보던 가족의 얼굴은 알록달록 색을 입고 작품으로 탄생했고, 기억 속에 가물가물 떠오르던 고향 집도 화폭 위에 살아났습니다.

어릴 적 공기놀이를 하던 친구들도 환한 얼굴로 태어났고 집 앞마당 감나무에도 주렁주렁 열매가 열렸습니다.

양순례(86) 할머니는 70년 전 결혼식 모습을 그대로 화폭에 옮겨 변함없는 사랑을 그렸습니다. 어린 나이에 시집간 양 할머니는 시집 식구 몰래 책을 사서 공부를 했지만, 시아버지가 “여자가 무슨 공부냐”며 책을 불태워 버렸다고 했습니다.

라양임(83) 할머니는 “내 몸은 종합병원, 나는 글을 많이 배우고 싶다. 가을에 누렇게 익은 나락처럼 내 머리에 글자들이 들어와 여물었으면 좋겠다”고 썼습니다.

할머니들의 글과 그림은 소녀의 감성이 물씬 풍겼습니다. 또박또박 정성스레 쓴 글씨는 정겨웠고 알록달록 색칠한 그림은 풋풋해 보였습니다.

할머니들은 지난 3월 서울에서 전시회를 열었고 쏟아진 관심과 애정에 힘을 얻었습니다. 내년 초면 출판사에서 정식으로 책도 나올 예정입니다.

어엿한 작가로 데뷔했지만, 아직도 할머니들은 인기가 실감이 나질 않나 봅니다.

출판 계약식에 참석한 안안심(78) 할머니는 소감을 묻자 “그냥 좋제 뭐”라며 활짝 웃습니다.

순천그림책도서관은 내년 3월 이탈리아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 참가하고 미국 뉴욕 전시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최성 기자/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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