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청춘, 액티브 시니어 칼럼
이형종 박사(한국액티브시니어협회 시니어 연구소장, 본지 객원기자)
나이를 말하는 순간 상대방의 태도는 확 바뀐다. 연애 이야기가 아니다. 취업 이야기이다.
미국에서 IT분야에서 20년 일한 경력이 있는 50세 여성 K씨는 구직 문의를 할 때 매번 문전 박대만 당한다고 하소연하다. 수 십 번에 걸쳐 입사지원서를 보내도 아무런 답변이 없다.
능력이 있고, 일할 의욕이 있어도 단지 나이 때문에 일자리를 찾기 어렵다. K씨는 20년 동안 미국에서 자신의 나이를 잊고 살았다. 한국에서는 낯선 사람을 만나면 생년월일을 묻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나이에 따라 서열이 정해지고 상대방이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아직 건강하고 능력을 쓸만한데도 나이를 이유로 취업의욕을 꺾어 버리는 한국이 매우 특별한 사회로 보인다.
현재 대부분의 중고령자들은 암묵적인 나이제한이나 나이 편견으로 강요된 불리한 상황에 있다.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적합한 능력과 적성을 가진 중고령자들이 직장에서 강제퇴직 당하고, 재취업시장에서조차 불이익을 받고 있다. 고령화에 맞춰 정년을 늘리거나 연령차별에 해당되어 정년제를 폐지한 선진국가와 매우 다른 풍경이다.
아이슬란드, 핀란드, 프랑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일찍부터 고용을 둘러싼 연령차별금지법이 시행되고 있다. 미국에는 고용상 연령차별금지법이 1967년 제정되었다. 40세 이상의 노동자를 대상으로 연령을 이유로 기업은 종업원의 채용과 승진 등의 차별과 해고를 할 수 없다. 개인의 능력과 자질과 관계 없는 생리적 연령에 의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외국의 연령차별금지법의 관점으로 본다면 한국의 연공적 처우, 정년제 등 고용제도와 인사관리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고용관행, 인사관리제도는 연령차별 금지와 모순이 발생한다. 정년퇴직은 일정한 연령에 도달한 것을 근거로 하는 일종의 해고이다. 기업주 입장에서 보면, 능력이 떨어지는 노동자를 쉽게 해고할 수 없는 제도이다. 근로자 입장에서 보면, 계속 일하고 싶어도 정년에 의해 이직할 수밖에 없다. 정년제도 때문에 일정한 연령을 넘어 직장에서 일을 계속 할 수가 없다.
인간의 능력은 편차가 있다. 그 편차는 정년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축소하지 않고 오히려 확대되고 있다. 일할 능력과 의욕이 있는 사람들에게 일률적으로 정년제도를 통해 연령차별을 하는 것은 인재를 잃는 것이다. 훨씬 능력이 떨어지는 후배에게 밀려 유능한 인재를 배제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권에도 어긋난다. 무엇보다 조직에 큰 손실이 된다.
적합한 노동자의 능력과 의욕을 살리지 못한다는 점에서 노사쌍방에 손실이다. 동일한 근무처에서 계속 일할 기회를 정년제도에서 고령이라는 이유로 정년 후에 재취업할 수 없거나 열등한 근로조건을 감수해야 하는 것은 확실히 연령차별에 해당한다.
건강하고 능력을 갖춘 시니어들이 넘쳐나고 있다. 건강과 능력에 개인차이도 크다. 이제 일할 의욕과 능력이 있는 사람은 연령에 관계 없이 일할 수 있는 다양한 고용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현재 생산가능인구가 매우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한국의 총인구가 감소하는 시대가 도래한다. 본격적인 인구감소시대를 대비해서라도 인권과 시대에 맞지 않는 정년제도의 폐지를 검토해야 한다.
강제 퇴직제도인 정년제가 없어진다면 연공서열적 임금체계도 없어진다. 연공임금을 폐지하고, 직무, 능력, 업적에 따른 임금체계를 도입한다면 회사원은 보유한 능력의 시가평가를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현재 회사에서 받는 처우가 많고 적음을 생각하고 그 타당성을 판단할 것이다. 그리고 더 좋은 대우를 받기 위해 능력과 기술을 업데이트하거나 새로운 능력을 개발해 나갈 것이다. 이러한 조직환경에서 중고령자들이 고용능력(Employability)를 갖추어 세컨 커리어의 기반을 마련할 것이다.
한편 직업에서 은퇴를 바라는 노동자에게 정년제도는 업무압박에서 해방되는 측면도 있다. 실제로 회사원들 중에서 정년이 있어 좋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정년이 없어진다면 언제 퇴직할지를 포함한 퇴직까지의 커리어 플랜과 퇴직 후 생애설계는 더욱 중요하다. 지금까지 회사에 맡겨둔 인생을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사람들은 스스로 결정하는 인생을 때로는 부담스럽게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