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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의 달 유월을 조명하며

夏·林·散·策 - 박하림(수필가 전 (주) 휴비츠 고문) 적의 5일간의 방심이 남한의 멸망 막아, 단언컨대“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현충의 달을 조명하기에 앞서 육이오전쟁 때 나라를 지키기 위해 산화한 호국영령들과 전쟁으로 인한 재앙으로 목숨을 잃은 영령들에게 삼가 조의를 표한다.

전격적인 북한군의 남침으로 시작된 3년간의 전쟁에서 인명피해는 남한이 2백만. 북한이 250만 명으로 450만 명에 달했다. 국군 100만 명의 사상자가 났으며 거의가 미군인 유엔군 사망자만도 3만5000 명이 전사했다. 전가옥의 30퍼센트가 파괴되었고 이재민 200만 명을 비롯해 전인구의 4분의 1이 굶주리는 처지로 전락했다. 

온 산하가 피로 물들고 아무데나 묻힌 시체가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았으며 유리걸식하는 고아들이나 거지들이 거리에 넘쳤다. 실로 금수강산 한반도는 곡성과 영면하지 못하는 고혼孤魂들의 원성과 굶주림과 절망으로 가득 찬 폐허로 변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남침을 개시한 북한군은 불과 사흘 만인 6월 27일 서울을 점령했다. 사태의 심각성에 놀란 미국정부가 파병을 결정한 게 6월 30일이었으니 이나라의 존망이 그 후 열흘간의 방어진 구축에 달리게 되었다. 

그런데 전세가 그토록 일방적으로 유리한데 ‘어째서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은 7월 2일 남쪽을 향한 진격을 재개하기까지 무려 5일간이나 지체했을까?’

 만약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한 후 밤을 도와 내처 남진에 나섰다면 아마도 부산을 점령하고 승전을 굳혔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만큼 한국군은 전열을 재정비할 여유가 없이 패퇴했고 남한정부는 황망소조 허둥댈 뿐 독자적으로 적을 저지할 힘이 없었다. 

그렇다면 대관절 무엇이 북한군 주력부대가 서울에서 5일간이나 지체하게 만들어 쫓기던 남한이 방어진을 구축할 수 있게 하였는가 하는 의문이다. 혹시 사령관이 병이 나서 이었을까? 너무 예상을 뒤엎고 저항 없이 진격, 싱겁게 서울을 점령해서 혹시 허허실실 암계가 숨겨져 있지 않나 불안해 진격을 늦췄나? 아니면 너무 빠른 진격 때문에 보급로가 길어져 병참계획을 망가뜨리는 걸 두려워 해선가? 

여러 모로 그 원인을 짐작해봤지만 적절한 해답을 찾을 수가 없다. 

해서 가장 타당한 이유를 가정해내는데 성공했다.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구약성경에 소개된 ‘거인 장수 골리앗과 양치기 소년 다윗의 말도 안 되는 싸움’ 일화를 소개하려한다. 

전쟁 초기 남북한의 전쟁양상이 딱 저와 같이 말도 안 되는 싸움이었다. 

하느님을 믿는 이스라엘과 숙적인 블레셋이 전쟁 중인 때였다. 이스라엘은 연이은 패전으로 극도의 불안과 혼란에 빠졌다. 패전의 원인은 신장이 3미터에 가까운 거인장군인 블레셋의 골리앗이 무적이기 때문이었다.

나라의 운명이 그야말로 풍전등화 지경이라 온 나라가 절망하고 있을 때 다윗이라는 신앙심 깊은 양치기 소년병이 홀연히 나타나 골리앗에게 싸움을 걸었다. 자신은 죽기로 작정하고 오로지 하느님의 도움에 의지해 싸울 것인데 믿음이 없는 힘이 어찌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의 힘에 맞설 수 있으랴 일갈하며 나섰다. 

그 모양을 상상해보라. 어린애가 육 척 장신 어른 앞에 버티고 선 것 같은 모양은 가히 목불인견이었다. 양쪽 진영에서 조롱 섞인 함성과 한숨어린 탄성이 교차해 울렸다. 골리앗은 하도 어이가 없어 수차례의 도전하는 외침을 듣고서야 밖으로 나왔는데 상대가 애송이 소년병임을 보고는 하도 기가 막히고 측은해 살려줄 터이니 어서 돌아가라 타일렀다. 그러나 다윗은 버티고 서서 도발을 계속했다. 

골리앗은 칼에 손을 대기 전에 한 번 더 살 기회를 주겠다면서 어디 공격해보라고 얼굴을 내밀었다. 

순간 다윗이 물매에 맷돌을 먹여 휘두르다 골리앗 면상 급소에다 던졌다. 물맷돌이 급소에 명중, 골리앗이 넘어져 죽었다. 양 진영의 명암이 갈렸다. 결국 블레셋군은 패퇴해 철수했다. 

하느님께서 다윗 소년병 물맷돌에 힘을 실어 주시고 골리앗 마음엔 교만심을 웃자라게 해 대비도 없이 물매 앞으로 얼굴을 내밀게 만들어 급소를 가격할 수 있게 만든 것이었다. 

그처럼 서울 점령으로 기고만장해진 사령관 마음속에 교만을 웃자라게 함으로써 필시 그 사령관은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리며 승전이 따 놓은 당상이라 자축했을 것이다. 그 맥락에서 진격을 늦추고 5일 동안이나 점령군의 기쁨을 만끽했을 것이다. 

 가정컨대 교만이 낳은 5일간의 방심이 남한의 멸망을 막은 것이니 그게 어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우리 애국가에도 우리나라는 하느님이 보우하신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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