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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에 생각하는 포식시대(飽食時代)

유화웅 칼럼
‘배고파 죽겠다.’고 온 국민이 힘들어하던 굶주림의 시대가 있었다. 곧 기아시대(飢餓時代)였다. 일제강점기를 지나 해방을 맞이하고 나라의 기틀도 제대로 세워지지 않다가 6.25라는 미증유의 동족끼리 싸움의 시기를 지나면서 대다수의 국민들은 밥이나 실컷 먹어 보았으면 하는 것이 소원이었다.

6.25동란 후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70년대에 들어서면서 ‘보릿고개’라는 기아를 상징하는 단어가 우리의 뇌리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우리도 할 수 있다.’ ‘잘 살아보세’가 국민의 잠재력을 일깨웠고 80년대 90년대의 풍요의 세월을 맞이하여 ‘기아(飢餓)’라는 단어는 후진국에나 적용되는 것으로 국민들에게 인식되었다.
‘배부름’ 그것이 또 다른 질병의 근원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 역사에도 국민들이 함포고복(含哺鼓腹)하던 시대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특수한 계층을 제외하고는 백성들은 항상 배고픔에 시달렸던 것 같다.

반면에 조선시대 임금님들을 보면 백성들과 달리 배부름에 고통을 겪었던 것 같다. 
특히 국가대사를 원만하고 오래 통치하기 위해서는 무병장수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많은 보약재를 상시 복용하고 온갖 산해진미로 식단을 짜서 매일 드시게 했으니 과도한 영양섭취로 건강이 위협받을 수밖에요.

조선시대 임금님들 중 환갑을 넘긴 분이 여섯 명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스물일곱분의 왕의 평균 연령이 47세라고 하였으니 최고의 어의(御醫)를 두고도 단명하였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세종대왕(1397~1450)은 고기를 좋아한 임금으로 그로 인해 건강이 무척 안 좋았다고 한다.
아버지 태종이 돌아가시고 3년 동안은 고기를 먹지 않은 법도가 있었음에도 6개월만 소찬(素饌 : 고기나 생선이 없이 나물 반찬으로만 차려진 밥상)을 했다거 한다. 

특히 허손병(虛損炳)이라는 몸이 허하고 약해 피부가 쭈글쭈글해지고 머리카락이 빠지는 병이 있어 고기를 먹지 않으면 안 되었다고 한다.
또 세종대왕은 비만해서 아버지 태종이 ‘때때로 나와 노닐라’라고 권하였을 정도라고 한다.

그리고 왕위에 오른 지 21년이 되는 1439년 6월 기록에는 한쪽 다리가 풍질로 아팠다고 한다.
세종대왕은 없는 병이 거의 없을 정도로 질병으로 고통을 받았는데 이는 요즈음의 성인병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만약 세종대왕께서 식생활 관리를 잘하셨더라면 더 오래 사시면서 더 큰 일을 많이 하셨을 것 아닌가 하는 아쉬움을 가져본다.

잘 먹고 싶은 것은 사람들의 욕망이다. 특히 육선(肉饍 : 고기반찬)을 즐기는 풍조가 도시 농촌 할 것 없이 일반화 된 요즈음은 옛날 왕가나 양반 사대부에 비할 바가 아니게 되었다.

우리나라 국민의 1인당 연간 육류(肉類) 소비량은 37kg이라고 한다. 미국의 120kg에는 못 미치지만 40년 전보다 10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소 한 마리를 키우는데 사람 한명이 먹는 곡식의 양이 11배가 필요하고 쇠고기 1kg을 생산하는데 사용되는 물의 양은 보리 1kg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물의 양의 1000배에 이른다고 한다.

그러니 육류(肉類)로 배불리는 포식가들이 늘어남으로 인해 곡식류를 차츰 잠식하게 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되었다. 따라서 소들도 곡식 사료를 못 먹게 되고, 육류 사료를 먹게 되니까, 그로 인해 다른 질병들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먹는 것 절제해야 하는데 음식에 대한 욕심을 좀처럼 꺾기가 어려운가 보다.
제왕(帝王)처럼 먹는 것이 소원이었던 그 꿈이 이루어지니, 또 다른 질병의 공포가 우리를 두렵게 하고 있다.

포식시대(飽食時代)는 또 다른 재앙이 되어 우리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
음식을 절제하고 남는 것으로 또 다른 한편에서 기아시대(飢餓時代)를 살아가는 지구촌 이웃들에게 눈을 돌려 베풀고 나누어 주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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