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청춘, 액티브 시니어 칼럼 - 이형종 박사(한국액티브시니어협회 시니어 연구소장, 본지 객원기자)
정호석(62세)씨는 늦게 본 손자가 귀엽고 이쁘기만 하다. 그런데 올해 복직을 앞둔 딸이 손자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고민스럽다.
맞벌이하는 딸의 사정을 생각해서 손자를 돌봐주고 싶지만, 선뜻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손자를 돌보는 기쁨과 보람이 크겠지만, 손자에게 얽매이다 보면 부부의 여가생활은 꿈도 꿀 수 없기 때문이다.
맞벌이 부부가 증가하면서 자녀양육을 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젊은 세대는 자녀를 낳아도 믿고 맡길 곳이 없다고 하소연한다. 남성직원들은 상시적인 장기 근로 때문에 공동의 육아에 참여하기 어렵다.
늘어나는 맞벌이 여성들과 비정규직원들은 힘든 육아환경과 불안정한 생활기반 때문에 결혼과 출산을 지연하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심지어 출산을 포기하는 부부도 늘어나고 있다. 결과적으로 출생아 수의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2017년 한국의 출산율은 1.05명으로 세계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출산율을 늘리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썼지만 2005년 1.08명보다 더 낮아졌다. 출생아 수는 2016년 40만 명대가 붕괴되었다.
2017년도에는 35만 7700명이다. 올해는 33만 명대에 그칠 것이라고 한다. 최근 출산율이 증가하고 있는 일본과 사뭇 대조적인 모습이다.
출생아의 급격한 감소와 함께 전국적으로 폐원하는 민간 가정 어린이집도 속출하고 있다. 인구 전문가들은 낮은 출산율이 지속된다면 인구감소 시점이 예상보다 당겨질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정부는 최근 종합적인 저출산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제는 저출산을 늦추는 실효성 있는 특단의 대책이 나오길 바란다.
정책의 핵심은 자녀양육을 하기 쉬운 사회경제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젊은 세대가 육아하기 쉽도록 일 방식을 바꾸고, 경제적 불안을 해소할 수 있다면 안심하고 자녀를 낳을 것이다.
특히 젊은 세대의 맞벌이 부부를 고려할 때 육아하기 쉬운 환경을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언제든지 자녀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의지처가 있다면 안심하고 직장에서 일할 수 있다. 아이를 낳은 후에 다시 복직하기도 쉽다. 경제적 소득이 늘어나면 양육부담이 줄어들기 때문에 자녀를 더 낳을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자녀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사회적 자원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또 젊은 세대는 사회적 육아환경을 크게 신뢰하지 않고 있다. 공적 양육지원기관과 자신의 부모를 자녀양육의 의지처로 더 신뢰하고 있다.
육아를 지원하는 조보모의 역할을 중시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조부모가 손자녀의 양육을 지원하는 역할이 새롭게 조명받기 시작했다. 조부모가 손자녀를 돌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건강한 조부모가 늘어나고 손자녀와 접하는 기간은 대폭 연장되고 있다. 선진국가에서 약 80%의 고령자가 조부모로서 손자의 육아에 관련되어 있다고 한다.
최근 일본에서는 지자체를 중심으로 조부모가 양육을 지원하는 환경을 만들고 있다. 일본의 일부 지자체는 NPO법인 ‘자녀양육니폰’과 제휴하여 조부모의 자녀양육 가이드북을 발행하였다.
홍콩의 사회복지부서는 2016년부터 ‘조부모를 위한 자녀케어 훈련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시니어의 양육지원에 대한 전문성과 안전성을 높여서 자녀를 맡기는 젊의 세대의 불안을 해소하려는 목적이다. 540개의 훈련기관에서 조부모가 양육의 전문성을 높일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조부모의 양육지원은 여러 가지 효과가 있다. 자녀양육을 지원하는 자원이 부족한 환경에서 증가하는 시니어 세대를 활용하는 측면이 있다. 지역사회에서 활동하면서 소득을 얻을 수 있는 좋은 프로그램이 될 수 있다. 또한 자녀양육을 통해 세대간 교류가 늘어나면 시니어의 정신적 건강에 기여한다. 손자녀를 돌보고 가르치면서 삶의 기쁨과 보람이 커지면서 정신적 건강에 유익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손자녀의 육아는 육체적으로 매우 힘든 일로 자식을 위해 돌봐줄 수밖에 없다는 부정적인 의견도 있다.
손자녀의 양육 지원 때문에 생활에 여유가 없어지고 체력적인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여성의 출산연령이 올라가면서 조부모의 연령도 높아져 체력적 부담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최근에 혈연중심의 지원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차원에서 자녀양육을 지원하는 사회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인류학자 크리스틴 호크스(Kristen Hawkes)는 할머니 가설(Grandmother hypothesis)을 제안했다. 할머니가 손자녀를 돌봐주기 때문에 인간은 수명은 더 길어졌다는 이론이다. 할머니가 젖을 뗀 손자녀를 돌봐주면 딸은 짧은 기간에 더 많은 자녀를 낳을 수 있다. 오래 생존한 할머니들의 장수 유전자를 물려받은 후손들은 더 오래 생존하면서 인류는 지속적으로 번영한다고 한다. 할머니가 손자녀를 돌보는 것은 후세대의 지속적인 번영을 위한 인류만의 위대한 소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