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유난한 장마와, 내 몸도 장마가 들어 같이 싸우느라 몸도 마음도 피폐(疲弊)해 졌었는데 그 긴 장마를 잘 이겨 낸 듯하다.
이겨 낼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천연계의 자연현상에 순응하는 일이었다. 작은 내 텃밭의 상추, 아욱, 가지, 고추 오이, 호박, 파프리카, 방울토마토, 참 많이도 심었다. 야채들을 가꾸어 나누어 주는 재미가 좋아서다.
긴 장마에 햇빛을 보지 못한 식물들이 이상기온에 몸살을 앓게 되었다. 오이는 뿌리 채 녹아버리고, 파프리카는 수 없이 꽃을 피우더니 누렇게 잎이 져서 과감하게 뽑아 버렸다.
고추, 가지, 토마토는 물을 먹고 하늘 높은지 모르게 키를 키우고 있으며, 수없이 꽃을 피우나 벌 나비가 날지 못하니 열매를 달지를 못하는 것이다. 식물들과 나는 장마에 버티기를 하는 것이다.
매운 고추는 자두나무와 키 재기를 하는 듯 했다.
장마가 그치고 햇빛이 비추이고 벌 나비가 날라 다니더니 내 뜰엔 환희의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리기 시작했다. 가지가 찢어져라 방울토마토와 고추와 가지가 열리는 것이다.
숲을 이룬 방울토마토는 가지치기와 잎을 따 주어야 한단다. 가지도 잎을 따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새벽마다, 기도와 함께 “욥기”를 매일 필사(筆寫)를 했다. 하나님은 가장 절망하고 가장 고통스러울 때 이겨내는 힘을 주시며, 인간을 통해서는 이룰 것이 없다 하심을 거울삼아 투혼을 이루려고 노력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하신 말씀도 생각하면서 말이다.
허리디스크 협착증은 우선 살을 빼야 한다기에, 한 동안 된장과 야채만 먹다가 고기를 먹었더니 속이 거북스럽고 부글거려서 온 몸이 무겁고 머리가 띵하고 귀까지 멍멍 하고 간질거려서 미쳐버릴 것 같다.
긴긴 고통의 시간들이 그래도 지나가고 앞뜰에도 어느 사이 난초가 반 뼘은 올라 와 있고 돌나물들이 마당을 장식하고 있지를 않는가, 병치레 마음치레 싸우느라 고정시선에만 꽂혀서 내려다보지를 못하고 위만 쳐다보고 앞 만 보았더니 낮은 곳에서 더 많은 행복한 웃음이 있는 걸 몰랐던 것이다.
말씀에 가장 낮은 자를 위하는 일이 나를 위하는 일이란 걸 잊고 있었던 것이기도 하다. 죽은 줄 알았던 난 화분에서 새순이 올라 왔다. 버려진 것을 주워 와서 마당 귀퉁이에 심어 놓았던 옥잠화도 어느새 순이 올라와서 무성하게 자란 잎들이 위로의 손짓을 보내고 있다.
꽃이라고 부르는 저 것들을 피우기 위해서 죽을힘을 다해 터트려 내지르는 소리를 보고 우리들은 봄이 왔구나, 환희의 노래를 부르지만 죽음을 불사한 행위이다.
작년 까지만 해도 건강에 자신이 있었고 특히 무릎은 튼튼하다고 큰 소리 친 내가 8개월 이상을 양방한방 병원을 다니며 봄, 여름을 다 보내고 말았다. 또한 자식들 눈치를 보아야하는 신세가 너무 서글픈 거다. 어느 날 갑자기 치아에도 문제가 생겨서 시큰거리고 찬 물을 먹을 수가 없다.
오랜 칫솔질 탓으로 달아서 신경이 파여서 그렇다고 한다. 이제 하나, 하나 고장이 나기 시작 하는 것이다. 심적인 고통이 가중된다. 자식들은 오히려 그럴 연세가 되었으니 너무 상심 마시라며, 병원비도 서슴없이 주지만 왜 그렇게 민망하고 거북스러운지 그 또한 스트레스인 것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다 의사이고 선지자인양 이것 해 보아라 저것 해 보아라 마음이 왔다갔다 나와의 싸움이 더 고통이 되었다. 단순해졌으면 좋으련만 단순하지 못하게 팔 개월 동안 얼마나 많은 생각들이 나를 괴롭혔는가!
기계로 허리 잡아 다니는 것을 석 달, 척추에 주사를 네 번이나 맞았고, 벌침을 맞고 알레르기가 일어나서 죽을 뻔 했으며. 약물 부작용으로 몇 번이나 고생을 하면서 도 의사선생님과 단판을 짓 자기도하고 반드시 고쳐 주실 것이라 믿으면서 팔 개월 동안 죽을힘을 다 해서 거의 두문불출(杜門不出) 치료에 매달렸다.
척추의 주사를 맞으려고 침대에 누워서 의사를 기다리는데 옆 침대에 누운 할머니가 무슨 병이냐고 묻는다. 척추협착증이라고 했더니 본인도 그렇다며, 칠십 여덟 살이고 병원에 다니는지가 십 오년이 되었다면서 처음에는 죽을 것 같더니 아픈 것도 적응이 된다며, 심하면 병원 오고 견딜 만하면 오지 않는다며 늙으면 다 그러려니 하고 살라고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치료, 저 치료, 권하는 유혹을 뿌리치는 일이 더욱 힘들기도 했다. 세 발짝도 걸을 수가 없어서 눈물이 쏟아질 정도로 괴로웠으니까 말이다.
눈물을 머금고 하루에 두 시간 이상씩 근육강화운동을 병행하면서 물리치료와 침술과 약물요법을 쓰면서 치료를 하던 중 가을 들어서면서 어느 날 소리 없이 스르르 괜찮아 진 것이었다. 시험 삼아 멀리 걸어 가 보아도 괜찮아서 돌아 올 때도 걸어 왔더니 괜찮은 것이다.
거짓말 같이 너 언제 그렇게 아팠느냐고 하는 것 같았다.
인내는 쓰나 열매는 달다 란 말을 실감 한 것이다. 노년의 첫 문턱을 잘 넘긴 게 아닌가 한다. 마음은 청춘인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한탄 하던 어른들의 말씀이 실감이 난다.
내가 그럴 나이가 되다니 참, 세월 이기는 장사는 없다는 말이 가슴에 와 박힌다. 몸도 마음도 일치 할 때만이 진정한 사람이다. 라는 부처님 가르침이 다시 상기(想起)된다.
이제 마음도 몸 따라 순리를 쫓아서 진정한 사람으로 거듭 태어나는 연습을 더 많이 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