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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능산리 고분군서 용문양 금제 장식 출토

서고분군 4기 조사 완료… “무덤간 위계 차이 나타나” 무덤 조성 임시 거처·제사시설 추정 건물터도 확인
능산리 서고분군에서 나온 금동제 관고리. 능산리 서고분군에서 나온 금제 장식.
일제강점기 조사 이후 약 100년 만에 다시 발굴한 충남 부여 능산리 고분군 내 서쪽 고분군에서 용 문양이 들어간 작은 금제 장식이 출토됐다.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고고학연구소와 부여군은 2016년 6월부터 2년간 능산리 서고분군 4기를 발굴조사한 결과 금제 장식을 비롯해 금송(金松) 목관 조각, 금동제 관고리와 관못을 찾아냈다고 4일 밝혔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에 포함된 능산리 고분군은 백제시대 왕릉급 무덤들이 한데 모인 곳으로, 왕릉군 7기를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에 또 다른 무덤이 존재한다.

이 가운데 중앙고분군과 백제 금동대향로가 나온 능산리 사지 사이에 있는 서고분군 4기는 1909년 세키노 다다시(關野貞)와 함께 조선고적조사에 참여했고 익산 쌍릉을 발굴한 야쓰이 세이이쓰(谷井濟一)가 1917년 조사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조사단은 “능산리 왕릉군 서쪽 작은 계곡 너머에 있는 능선에서 무덤 4기를 확인하고 그중 2기를 발굴했다”는 기록과 간략한 지형도만 남겨 고분 규모와 실체를 파악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연구소 관계자는 “능산리 서고분군 전모를 파악하기 위해 시작한 이번 발굴에서 일제강점기 조사와 도굴로 유물은 거의 남지 않았다”면서도 “2호분 돌방 바깥에서 나온 금제 장식은 길이가 2.3㎝에 불과하나, 끝이 뾰족한 오각형이고 장식이 화려해 부장품 일부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금제 장식과 함께 찾은 목관 조각은 일본 특산종으로 무령왕릉 목관 수종과 같은 금송으로 확인됐다.

서고분군은 능선을 따라 2·3호분, 1·4호분이 각각 다른 축선에 있다. 고분 양식은 모두 백제 사비도읍기 전형적 백제 무덤 형태인 횡혈식 석실분(橫穴式石室墳·굴식돌방무덤)이다.

시신을 안치한 방인 현실(玄室)에 무덤길이 있어 평면 구조는 갑(甲)자 모양이며, 잘 다듬은 판석으로 만든 것으로 조사됐다.
다만 고분 지름이 2·3호분은 20m 내외, 1·4호분은 15m 내외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연구소 관계자는 “2·3호분과 1·4호분은 석실 규모, 석재 가공 정도, 입지에서 차이를 보인다는 점에서 무덤 주인공의 위계가 다른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현실 크기는 무덤 4기 모두 가로 270㎝, 너비 100㎝, 높이 130㎝ 안팎이다. 현실 단면은 1·2호분이 사각형, 3·4호분은 육각형이다. 배수시설은 1·4호분에만 있었다.

연구소 관계자는 “3호분은 석실 평면 형태와 천장 구조를 보면 능산리 중앙고분군 서상총과 7호분, 익산 쌍릉과 유사하다”며 “능산리 서고분군 조성 시기는 7세기 이후이고, 능선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조사단은 고분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건물터 유적도 확인했다.
서고분군을 중심으로 무덤을 만들지 않은 서쪽 능선에서 가로 4칸, 세로 2칸으로 추정되는 초석 건물터가 나왔고, 1호분과 4호분 사이에서는 수혈(竪穴·구덩이) 주거지 2기가 드러났다.

연구소 관계자는 “건물터 위치와 구조를 보면 무덤을 조성할 때 만든 임시 거처나 제사를 올린 시설로 판단된다”며 “삼국시대 고분군 중 고분 구역에서 건물 유적이 나타난 것은 처음이라는 점에서 백제시대 상장례(喪葬禮) 연구에 도움이 되는 자료”라고 평가했다.
                                              반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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