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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소리 들으며 걷는 천년 옛길, 상주 백화산

구수천 징검다리
‘호국의 길’은 경북 상주와 충북 영동의 경계에 있는 백화산(993m)을 오른쪽으로 두고 상주 옥동서원에서 영동의 고찰 반야사까지 구수천(석천)의 여덟 개 여울을 따라 걷는 5㎞ 남짓의 호젓한 길이다.

초반에 옥동서원에서 백옥정까지의 오르막만 넘으면 돌길, 흙길, 톱밥길, 나무 데크로 편안하게 걸을 수 있다.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아 오가는 사람이 많지 않은 편이다. 깊은 골짜기의 물소리, 새소리, 흙냄새, 나무 냄새, 바람을 오롯이 즐기기에 더없이 좋다.

백화산 '호국의 길'에는 이야기가 많다. 신라 태종 무열왕이 삼국통일의 대업을 도모한 전초기지인 금돌성과 고려 승병이 몽골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둔 저승골, 고려 악사가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몸을 던진 임천석대가 있다. 임진왜란 때도 의병들이 활동하던 곳이어서 '호국의 길'이란 이름을 붙였다 한다.
그러나 시원한 물소리를 들으며 출렁다리와 돌다리를 건너고, 암벽 풍경에 감탄하며 걷다 보니 ‘구수천 천년 옛길’이라는 이름에 더 마음이 간다. 옛사람들이 이 마을과 저 마을을 오갈 때 이용한 지름길이었다.

황희 영정 모신 옥동서원
시작점인 상주의 옥동서원을 먼저 둘러본다. 옥동서원(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532호)은 고려 말부터 조선 초까지 7명의 국왕을 모시며 조선 초 유학의 기반을 마련한 명재상 방촌 황희(1363∼1452년)를 추모하는 서원이다. 황희 선생 영정을 포함해 책판과 고문서, 현판 등 많은 기록유산이 있다. 현재 사당 보수 공사가 진행되고 마당에 잡초가 자라는 등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지만 그 운치는 놓치기 아깝다.

휴대전화도 잠드는 깊은 골 
바위에 새긴 빨간색 글씨 만큼이나 섬뜩한 저승골은 1254년 침입한 몽골군이 고려 승병들에게 쫓겨 떼죽음을 당한 곳이다. 고려사는 ‘패퇴한 몽골군이 남하하며 20만6800여 명을 사로잡았고 살육된 자는 이루 헤아릴 수 없으며 거쳐 간 고을은 모두 잿더미가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달도 머물다 간다는 월류봉(月留峰)도 들러볼 만하다. 위로는 깎아 세운 듯한 여섯 개의 봉우리가 이어지고, 아래로는 금강 상류의 한 줄기인 초강천이 굽어 흐른다.
월류봉을 비롯한 주변의 8개 절경을 한천 8경이라 부른다. 한천(寒泉)은 우암 송시열이 월류봉이 잘 보이는 곳에 은거하며 후학을 가르쳤던 한천정사에서 따왔다. 이 일대는 지금은 없는 신라의 거찰 심묘사가 있던 곳으로, 조선의 지리서 동국여지승람은 심묘사의 사내팔경 중 으뜸으로 월류봉을 꼽고 있다.              

조둘연 기자/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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