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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2막의 설계

두레박 - 최낙경(공학박사, 수필가, 대한조선학회 원로회원)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자녀들을 모두 제 둥지를 틀어 내 보내고 난 후 남은 부모들 세대를 인생 리본(reborn) 시대란 이름을 붙였다. 

리본 세대는 최근의 산업화와 고령화로 경로사상마저 퇴색되었다. 자녀의 봉양은 언감생심, 모아 놓은 재산으로 백세시대를 살아야하는 대세로 밀려나고 있다. 

그 뿐이랴. 영국 노학자 세라 하터의 말대로 죽을 때까지 함께하자는 백년해로(百年偕老)는 이미 옛말이다. 
이혼, 졸혼(卒婚)까지 넘쳐나고 있는 세대. 은퇴는 일없이 조용히 여생을 즐겁고 슬기롭게 살도록 배려한 시대라고 하지만 이게 아닌 게 또한 현실이다.  

이러한 때 참고 될 만한 책을 펼쳐 본다.

호주에서 태어나 문학상을 타고 동화, 시나리오 등 여러 장르에서 활동하면서 영연방 작가상, 마일즈 프랭클린 문학상 최종후보에 오른 소설가 코리 테일러(Cory Tayor). 그가 흑색종 관련 뇌종양을 앓다가 삶의 마무리를 앞두고 ‘언젠가 나 처럼 이런 상황과 맞닥뜨렸을 때 한 없이 외로워질 누군가를 위해 자서전 “죽을 때 추억하는 것”을 쓰기 시작했다. 

“삶이 소중한 이유는 언젠가 끝나기 때문이다. 살아 있다는 것의 소중함과/ 마지막 순간에는 무엇이 가장 소중하게 여겨질 것인지 생각하게 한다.  

삶의 끝자락에선 안락사와 자연사를 결정하는 인간 삶의 자율권 등 나와 무관하다고 여긴 여러 생각거리도 떠오른다” 등등, 사려 깊고 영감 가득한 작가가 우리에게 보낸 마지막 선물로 비추어진다.

그리고 삶의 마무리의 자율권을 요구하는 절박한 호소인 동시에 삶의 기쁨과 슬픔, 불완전성을 환기시킨 유언으로도 들린다. 그는 자기 어머니의 죽음을 똑똑히 지켜보면서 “그녀가 겪었던 고통과 굴욕, 무너지는 자존감과 흐려지는 정신이 한 인간을 얼마나 황폐화시키는지를 똑똑히 봤다고 했다. 수년 간 자발적인 안락사 운동단체에 지원에 몰두했지만 제 아무리 선한 그 어떤 의사도 그의 어머니를 도울 수 없었다면서.

두 번째는 죽어가는 사람에게도 조언을 들을 수도 있다. 호주의 호스피스 간호사가 임종 환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그들은 다음과 같은 후회를 남겼다. 
“남이 원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과 “일만 너무 열심히 했다”는 것이다.

임종 직전에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하고 남이 원하는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뒤 늦게 깨달으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그리고 일생을 일에만 혹사를 당해서 허탈함은 또한 후회스러운 일이지 않는가?

세 번째는 세상을 떠난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방법도 있다. 그들의 유언이나 묘비명을 통해서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그들이 생전에 염원하며 몸부림쳤던 자취는 묘비명으로 남아 후세에 전해진다. 그러기에 우리는 망자의 회한과 깨달음을 통해 어느 가르침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백년 전쟁 때 영국의 태자였던 에드워드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지나가는 이여 나를 기억하라. 지금 그대가 살아 있듯이 한 때는 나 또한 살아 있었노라. 내가 지금 잠들어 있듯이 그대 또한 반드시 잠들리라.” 

어느 성직자의 묘지 입구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다. “오늘은 내 차례, 내일은 네 차례”라고 적어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유럽을 정복한 알렉산더 대왕은 “내가 죽어 땅에 묻을 때 손을 땅 밖으로 내 놓아라” 천하를 손에 쥐었던 알렉산더도 떠날 때는 빈손으로 갔다는 것을 이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 준 것이다. 유명한 헨리 8세의 딸로서 왕위에 오른 엘리자베스 1세는 어려운 여건에서 훌륭한 수완을 발휘해 영국의 왕정을 반석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묘비명에는 짧은 말을 남겼다. “오직 한순간 동안만 나의 것이었던 그 모든 것들”

교보문고의 세계 문학가 선호도 조사 결과 그리스인 조르바가 1위로 뽑혔다. 그의 묘비명은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몇 년 전 시애틀타임스는 6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여성 작가 제인 로터의 부고를 실었는데 이 부고를 쓴 사람은 바로 작가 자신이었다. 

그는 삶이란 선물을 받았고 이제 그 선물을 돌려주려 한다면서 남편에게 쓴 유언에 “당신을 만난 날은 내 생에 가장 운 좋은 날이었다” 라고 전했다. 삶의 마무리 앞에서도 의연하고 살아있는 이를 배려하는 모습이 감동을 준다. 중국의 동산 선사는 “살아 있을 때와 같이 죽을 때도 철저하게 충실하라”고 가르쳤다. 그가 죽기 전 남긴 말은 “이생은 멋진 여행이었다. 다음 생은 어떤 여행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이 밖에도 많은 묘비명이 있지만 제일 쇼킹한 것은 버나드 쇼(1856~1950)의 묘비명이다. 
그는 1950년 사망할 때까지 극작가·평론가·사회운동가 등으로 폭넓은 활동을 하면서 1925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오만함과 익살스러움으로 명성을 떨쳤던 버나드 쇼는 94세까지 장수하며 자기의 소신대로 살았다.

하지만 그가 남긴 묘비명이 실로 충격적이다. “내 우물쭈물하다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 동서양에 걸쳐 명성을 떨치고 의미 있는 삶을 살다간 문인이요, 철학자며 노벨상까지 받은 인물이다. 이런 사람이 왜 자기의 삶을 우물쭈물했다고 자평한 것인가? 삶의 마지막 순간에 정말 중요한 것을 왜 놓치고 살았다고 후회했을까?

해가 바뀐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유월 하순으로 접어든다. 인생 2막, 리본 세대의 세월은 노도(怒濤)처럼 흘러간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더 빨리 지나갈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영원히 살 것처럼 우물쭈물하다가 임종이 다가와서야 버나드 쇼처럼 쩔쩔매며 후회한다. 

먼저 살았던 사람들의 묘비명이 그것을 말해주듯이. 이제 우리가 할 일은 그들이 알려주는 조언을 깊이 새겨 같은 후회를 하지 않도록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자신이 사후에 어떻게 기억됐으면 좋을지, 아니면 코리 테일러처럼 자서전을 쓰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 
바쁜 일상에서 잠깐 일손을 멈추고 나의 묘비명을 그려보는 것도 인생 2막을 설계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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