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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 주시옵소서 라고 하던 시절

유화웅 칼럼
‘제왕(帝王)은 명령만 할 뿐 책임은 지지 않는다’ 는 말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 제왕(帝王)은 도덕이나 윤리 그리고 국법(國法) 위에 존재하기도 했습니다. 

고려 태조 왕건(王建)은 고려를 건국한 왕으로 역사에 기록되고 있는 반면 그 이면에는 왕이기 때문에 인정하는 반윤리적인 면도 있었습니다.

태조 왕건은 왕후 6명과 부인 23명을 합하여 29명의 여인들을 거느렸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제왕이기 때문에 가능했고 또 그것을 권력의 상징으로 행사하였고 백성들은 당연시 하던 시대였지요. 

‘제왕무치(帝王無恥)’ 라고 하여 왕은 무슨 일을 하여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는 뜻이지요. 따라서 제왕은 누가 나무라고 책임을 지울 수 없는 절대적 존재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니, 책임은 모두 신하(臣下)들과 백성들이 지게 마련이지요.

어떤 잘못이 있으면 죄를 고백하고는 죄의 유무(有無)와 가볍고 무거움에 관계없이 한결 이 신하나 백성은 ‘죽여 주시옵소서’를 반복하는 것이 전부가 되는 세상이었습니다.

죽을 죄가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으나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죽여 주시옵소서.’ 는 신하나 백성이 제왕 앞에서 최선이며, 최후의 절규였을것입니다. ‘죽여 주시옵소서’에 담겨 있는 속뜻이야 살려 달라는 간절한 애원의 반어적 표현일 수도 있고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충성스러운 마음도 있었겠지요.

그리고 왕조시대는 역적으로 몰리거나 역적이 되어 사약을 받거나 참수를 당하게 되어도 죽기 전에 북향재배(北向再拜 : 임금이 있는 곳으로 두 번 절하는 예절)를 하는 것이 당시 윤리였습니다.

충절(忠節)은 백성 된 도리로 지켜야 할 절대 가치이지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법 아래 만인이 평등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죽을 죄를 졌어도 세 번의 법정 심판을 받을 기회가 있고 또 자기를 대신하여 변호인의 변호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나라에서 변호인을 선정해서 피고인의 편에 서서 법정 대리인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또, 재판에서는 증거제일주의라 하여 증거가 없으면 죽을 죄도 살아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쩌면 법의 보호아래 뻔뻔스러워져가는 모습을 때로 보이기도 합니다.  금융권력, 경제권력, 정치권력의 중심에서 높은 자리에 있던 이들이 부정과 비리에 관련되어 사직 당국의 조사를 받는 모습들이 언론에 보도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억울하다는 이들도 있고 죄 없다 변명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라보는 대다수의 국민들은 죄가 있건 없건 사직 당국의 조사의 대상이 되었다는 그것만으로도 손가락질하고 분노하기도 합니다.

옛날 같으면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죽여 주시옵소서.’를 연발하고도 남을 사람들인데 지금은 재판이라는 좋은 제도가 있어서 모든 죄의 유무를 법에 호소하고 심판 받고 있습니다. 판결이 있기 전까지는 무죄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민심은 죄의 경중(輕重)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도층에서 국민들에게 겸손하게 봉사할 사람들이 법의 심판대에 오른다는 그것만으로도 그럴 수는 없다라고 속상해 하고 있는 것이지요.

로마의 영웅 ‘율리우스 카이사르’ 가 생각납니다.

카이사르는 두 번째 부인 폼페이아와 이혼을 했습니다. 법원은 폼페이아의 스캔들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그러나, 카이사르는 ‘그녀가 세상의 의심을 받는 것만으로도 카이사르의 아내가 될 자격이 없다.’ 고 단호하게 말하고 이혼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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