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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야코죽이기

夏·林·散·策 - 박하림(수필가, 전 (주) 휴비츠 고문)
낭만이 없는 삶이란 사는 재미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시대의 한 가지 특징이 낭만의 고사枯死현상이다. 

옛날에는 고래 잡으러 동해바다로 가자고 노래했는데 이제는 온통 입만 열면 야리야리한 사랑타령이지 그런 신나는 사설은 들리지 않는다. 

 대관절 낭만이란 무엇인가. 공상 세계 피안으로 뭔가를 동경하여 배를 저어 가는 멋진 감정이다. 

철학자 횔더린은 ‘꿈꾸는 인간은 사유하는 인간보다 신에게 더 가깝다.’고 했다. 자유로운 공상 세계를 동경하며 개인의 감정을 중요시하는 게 낭만주의다. 

 《위대한 개츠비》에서 주인공 개츠비는 남의 아내가 된 데이지에 대한 사랑 때문에 결국엔 그녀의 남편 총에 맞아 죽는다. 데이지는 일말의 애도하는 감정도 보이지 않고 떠나버린다. 

그토록 허망한 사랑을 두고 어떤 독자들은 ‘바보 개츠비’라고 비웃고, 어떤 독자들은 너무나 순수하고 낭만적인 사랑을 했다면서 ‘위대한 개츠비’라고 한다. 세상 어디에선가 저런 위대한 낭만이 피고지고 있는 것이다. 

 작곡가가 감정의 출렁임을 다 누르지 못해 악보의 어느 소절에다 샤프나 플랫을 넣어 살짝 리듬의 멋을 내는 것, 눈밭 숲에 벌러덩 누워 눈을 감고 눈뭉치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때 외로운 눈물이 고이는 것, 달빛이 고즈넉한 툇마루에 아내의 무릎을 베고 마스카니의 루스티카나 간주곡을 듣는 것 같은 멋진 낭만이 피고 져서 사는 재미를 살리는 것이다.

 한데 우리 삶에서 그런 낭만을 야코를 죽여 앗아가는 원흉이 있다. 

실인즉슨 그것들은 우리가 노상 부려먹는 이를테면 생활의 이기利器이며 감정의 산물이다. 그것들은 스피드와 기계, 불신과 무딘 마음 따위다. 

 우리 삶을 비정상적으로 속도 화 시킨 것은 치열한 경쟁과 삶이 불안한 조바심이다. 속도 때문에 우리 마음의 행간은 좁아지고 마음도 몸도 늘 동동거린다. 

남보다 먼저이어야 하고 더 많이 차지하려면 스피드에 복종해야 한다. 사고와 판단, 말과 행동 등을 속전속결 주의로 해야 효율적이란다. 효율 중독이 중증이다. 인간미나 도리를 고려할 여유가 없다. 

 대량생산을 위해 기계는 가능한 한 최대 속도로 돌아가야 한다. 기계화는 감정을 죽이고 사람을 로봇으로 둔갑시킨다. 셈만 빠르면 만족이란다. 

예컨대, 과거에 떡메를 치며 둘이서 추임새 놓듯 장단을 맞추던 낭만은 사라지고 떡은 아무런 추억도 없는 기계가 잘도 찍어내면 그만이다. 

그런데다 사람의 심성에 티눈이 박이듯 불신을 품고 감동에 무뎌지기 시작하면서 낭만은 무시당했다. 같이 감동하고 같이 멋지게 느껴져야 하는데 인간적인 신뢰감이 메마른 마음에 낭만이 깃들 리 만무하다. 

더구나 감동할 기회나 마음도 없고 사물과 인간관계를 순수하게 볼 마음이 없으니 마음은 무뎌질 대로 무뎌져서 낭만은 거추장스러워졌다. 

낭만이 제대로 피지 못하는 삶은 무미건조하다. 

들꽃 한 다발이 꺾여 그대로 시들면 무의미하고 허무한 종말이지만 따듯한 마음이 내민 손에 들려가 병자 아내의 머리맡에 꽂히면 그 들꽃은 행복한 낭만이 된다.

낭만은 감정의 아름다운 멋 부림이다. 정서가 고갈되지 않고 감정이 석화되지 않는 한 낭만을 알아볼 수 있고 즐길 수 있으며 낭만을 하찮게 여기지 않는다. 

멋진 낭만이 없는 사랑은 무의미하며 낭만을 모르는 청춘은 꿈을 꾸지 못하는 불행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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