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독일로 떠나기에 앞서 송별전에서 선진 축구를 배워서 후배를 양성하겠습니다'라고 약속했습니다. 그 약속을 평생 지켜가는 것이 저의 사명이 됐습니다.”
‘사명’(使命)의 사전적인 의미는 맡겨진 임무를 말한다. 그러나 아무도 한국 축구의 레전드 차범근(65) 감독에게 ‘유소년 육성’의 임무를 맡긴 적은 없다.
하지만 차범근 감독은 우직하게 한국 축구의 밝은 미래를 희망하며 40년 전 내놓은 유소년 육성을 향한 ‘축구인 차범근의 맹세’를 꾸준히 지켜나가고 있다.
차 감독은 설명이 필요 없는 한국 축구의 레전드다.
한국 선수로는 역대 처음으로 독일 분데스리가 무대에 진출, 정규리그 308경기에서 98골을 넣어 아시아 선수 역대 최다득점을 기록하며 ‘차붐’이라는 애칭을 얻었다.
국제축구역사통계 연맹(IFFHS)은 차 감독에게 ‘20세기 최고의 아시아 선수’라는 명예도 헌정했다.
그는 현역 시절 팬들로부터 받은 사랑을 ‘유소년 육성’으로 되갚는 것을 남은 축구 인생의 업으로 삼았다. 이제 차 감독은 유소년 육성을 향한 ‘평생 꿈’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한국을 넘어 아시아 전체의 축구 유망주 발굴을 위한 ‘팀차붐 플러스 프로젝트’가 새로운 도전 주제다.
‘팀차붐 플러스 프로젝트’는 그동안 차 감독이 강조한 ‘아시아 축구가 경쟁하며 함께 발전해야 한국 축구도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다’는 지론을 완성하는 첫걸음이다.
지난 18일 차 감독은 두 아들 두리, 세찌와 함께 중국 선전에 도착했다. 선전은 차 감독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는 지역이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 대표팀을 이끌었던 차 감독은 중도 경질의 아픔을 겪은 뒤 그해 한국을 떠나 중국 프로축구 선전 핑안의 지휘봉을 맡았다.
비록 1년 반 동안의 짧은 기간 선전에서 심적으로 많은 위안을 받은 차 감독은 ‘선전에서 꼭 축구교실을 열겠다’는 다짐을 했다. 선전에서 ‘팀차붐 풀러스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20년 만에 약속을 지켰다.
차 감독은 중국 국영기업 시틱그룹(中信·CITIC) 산하 ‘중정문화체육발전관리유한공사(중정문체)’의 투자를 받아 ‘팀차붐 플러스 프로젝트’를 펼친다. 이 프로젝트는 차 감독이 지난해부터 시작한 ‘팀차붐 프로젝트’의 아시아 확장판이다.
차 감독은 지난해부터 ‘차범근 축구상’에 변화를 줬다. 대상을 폐지하고 유소년 선수 11명을 뽑아 ‘팀차붐 베스트11’을 꾸려 독일 분데스리가 유소년팀과 경기를 치를 기회를 주고 있다. 이것이 ‘팀차붐 프로젝트’다.
‘팀차붐 프로젝트’의 영역을 넓혀 한국과 중국의 유소년 선수들을 선발해 매년 독일 분데스리가 유소년 팀들과 친선전을 치러 어릴 때부터 국제 경험을 쌓아주겠다는 게 차 감독의 바람이다.
차 감독의 유소년 축구 육성의 뿌리는 깊다. 그는 1978년 일본에서 열린 ‘재팬컵’에 태극마크를 달고 참가해서 일본의 체계적인 유소년 축구 육성 체계를 지켜본 뒤 유소년 육성의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했다.
차 감독은 19일 중국 선전에서 취재진과 만나 “당시 일본 어린 선수들이 ‘타도 한국’을 슬로건으로 훈련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러다 한국이 일본 축구에 뒤집힐 날도 오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유소년 육성의 중요성을 실감했다”고 강조했다. 이것이 ‘차범근 축구교실’의 초석이 됐다.
그는 “러시아 월드컵을 지켜보면서 축구 강국 선수들의 개인기를 유심히 비켜봤다”라며 “그런 것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유소년 때부터 꾸준히 훈련을 통해 익숙해진 것”이라며 “어릴 때 느끼는 볼에 대한 감각은 나이가 들어서는 느낄 수 없다. 한국 축구의 문제는 제대로 된 유소년 육성이 되지 않아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더불어 일찌감치 유럽 축구를 경험해보는 것에 대한 중요성도 강조했다.
차 감독은 “‘팀차붐 프로젝트’를 하면서 어린 선수들이 독일의 또래 선수들과 경쟁하며 승리를 따내자 자신감이 수직으로 상승했다”라며 “재능있는 어린 선수들에게 어릴 때부터 큰 무대를 경험할 기회를 주면 실력이 일취월장한다”고 설명했다.
‘팀차붐 플러스 프로젝트’는 한국과 중국에서 시작해 아시아 전체를 대상으로 규모를 늘리는 게 궁극적인 목표다.
차 감독은 “아시아의 한 나라만 잘해서는 아시아 전체의 축구 발전이 이뤄질 수 없다. 유럽도 서로 부대끼면서 치열하게 경쟁하다 보니 긍정적인 시너지 효과가 나왔다”라며 “한국과 일본은 물론 나머지 나라들도 서로 발전하며 경쟁해야 한다. 중국은 축구 발전의 모든 조건이 갖춰졌지만 아직 결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아시아 국가들이 서로 경쟁해야만 아시아 축구가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승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