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 오랜만에 편지를 쓰니 감개가 무량합니다. 당신께서는 43여 년을 교직에 근무하시면서 평생을 2세 교육에 헌신하셨습니다.
정년퇴임 이후에도 청소년 예절학교와 노인대학을 운영하시고, 봉사활동, 결혼식 주례, 종친회 사무, 당항포관광지 문화유산해설사 등 실로 왕성한 활동을 하셨습니다. 그런 결과로 제1회 ‘멋진 노인 대상’도 받으셨지요. 그날 행사를 주관한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전국에서 최초로 이 상을 만들기는 하였지만, 수상자가 없을까 고심하였는데 만장일치로 선출되어 기쁘다 하였습니다.
지난 4월 갑자기 급성 폐렴으로 입원하시면서 위기가 찾아왔지만, 특유의 강인한 정신력으로 빠르게 회복하였습니다. 부디 예전처럼 건강하시어, 내년엔 백수(99세)를 맞이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백수를 앞두고, 당신께서 100년을 사시면서 제게 물려주신 아름다운 유산을 나열해 보며, 당신께 감사를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가장 중요한 건강을 주셨습니다.
2004년 ‘멋진 노인 대상’ 수상소감으로 “나의 건강 비결은 평소에 잘 먹는 것”이라 하셨지요, 2014년 EBS 방송 ‘장수의 비밀’에 출연하셨을 때도 “아파서 약 사 먹을 돈으로 반찬 사서 평소에 잘 먹는 게 나의 건강 비결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둘째, 계획성과 근검절약을 몸에 배게 하였습니다.
사전에 계획하고 준비하는 성실한 자세와 근검절약을 행동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칭찬과 보상으로 자율성을 키웠습니다. 바로 오늘의 제가 있게 한 원동력이라 확신합니다.
저의 두 딸에게도 물려주어 당신의 손녀로 훌륭하게 성장하였습니다.
셋째,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는 부모로서의 롤모델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미국의 하버드 대학교 그레고리 맨큐 교수는 만 50세가 되던 2008년 뉴욕타임스에 <나의 생일 소원>이라는 칼럼을 기고하였는데 그 제목이 <늙어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는 것>(Not burdening our children) 입니다. 이미 당신께서는 그것을 실천하셨습니다. 자식들에게 일체의 금전적 부담을 지우지 않으셨습니다.
칠순, 팔순 잔치도, 결혼 60주년 <회혼례> 행사마저 검소하게 치를 것을 한사코 고집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저희 4남매가 남부럽지 않게 생활하고 있는데, 변변한 생일잔치, 해외여행 한 번 보내드리지 못하였습니다. 더군다나, 워낙 건강하게 사시다 보니 무관심하여 살고 계시는 집을 불편함이 없게 리모델링해 드리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후회 됩니다.
마지막으로 100세 시대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해 주셨습니다.
2011년, 제가 퇴직하였다는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으셨지요.
한참 동안 멍하게 하늘만 쳐다보다 “경철아, 내가 이렇게 오래 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너는 아마 100살 이상을 살 것이다. 90살까지는 그래도 그럭저럭 살만하다. 향후 30년이라는 세월은 지금 새로 시작해도 늦지 않으니 잘 준비해라!”고 신신당부하셨습니다.
저는 당신께서 일깨워 주신 100세 시대를 명심하고 인생 2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당신께서 물려주신 네 가지의 아름다운 유산을 제 자녀에게도 전하겠습니다. 항상 강조하신 가정의 화목을 위한 가족회의 제도를 실천하고, 가훈인 화합, 성실, 신의로 살겠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그 누구보다도 멋진 인생을 사셨습니다. 저의 아버지가 되어 주셔서 자랑스럽고 행복합니다.
그동안 베풀어 주신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부디 건강하게 해로하시어, 내년 봄엔 꼭 백수잔치를 성대하게 해 드리고 싶습니다.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은 액티브시니어의 롤모델로서 존경합니다. 영원히 기억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