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청춘, 액티브 시니어 칼럼
이형종 박사(한국액티브시니어협회 시니어 연구소장, 본지 객원기자)
영화 ‘어바웃 슈미트’는 한 퇴직자의 심리적 갈등과 방황을 그린 영화다.
주인공 슈미트는 일생 동안 직장에서 묵묵히 일해온 평범한 남성이지만 퇴직 후에 큰 시련에 부딪힌다.
퇴직 후 회사에 갔을 때 자신이 작성한 인계서류가 그대로 박스에 들어 있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그후 사망한 아내의 편지를 정리하던 중 아내가 그의 친구와 불륜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고 분노한다. 외동 딸이 데려온 약혼자는 아무리 봐도 착실하게 보이지 않는다. 결혼식 피로연 연설을 마치고 화장실에 뛰어들어가 그 분노를 폭발시킨다.
이 영화는 퇴직 후 가족을 둘러싼 일상 생활을 속에서 중년 남성이 겪는 방황과 고독을 잘 보여주고 있다.
슈미트와 같이 퇴직 전후 방황하는 중장년층이 많다.
대기업 물류회사에서 일하는 서현철씨(57세)는 3개월 후 퇴직을 앞두고 있다. 요즘 퇴직 후 삶을 생각하면 잠을 이루지 못한다.
어떤 때는 공포감이 밀려온다.“회사를 그만두면 어떻게 될까?”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먼저 퇴직하여 일자리를 찾지 못한 선배들의 모습을 보면 더욱 불안하다.
남의 일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내 답답한 심정을 털어놓고 조언을 받으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것 같다.
30년 동안의 직장생활은 좋았다. 여러 부서를 이동하면서 인연을 맺은 동료들과 잘 지내왔다. 일에 대한 의욕이 높았고, 실적이 좋으면 급여 외에 상여금도 받았다. 때로는 잔업으로 힘들었지만 아침에 일찍 일어나 회사에 즐겁게 출근하였다.
회사가 내 존재자체였다. 회사를 떠나서 아무 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3개월 후에 이렇게 정든 안정된 일터를 잃는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는다.
갈 곳 없는 미래를 생각하면 두렵고 당혹스럽다. 아직 멀쩡하게 일할 수 있는데 회사를 떠나야 한다니 억울한 심정도 든다.
“내가 회사에서 그렇게 필요 없는 사람일까?”젊음을 받쳐 회사를 위해 뼈빠지게 일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떠나야 하는가?”분노와 배신감이 교차한다. 하루 하루 마음이 편치가 않다. 점점 자신감이 떨어지고, 자기다움을 잃어간다.
퇴직 후에도 마땅히 갈 곳을 찾지 못한 채 방황하는 사람도 많다.
박민호씨(54세)는 1년 6개월 전에 금융회사에서 퇴직하였다. 그 동안 열심히 재취업 일자리를 찾아보았지만 쉽지 않다. 재취업 알선기관에서 전직상담을 받아도 모호하고 공허한 답변 뿐이다.
“대기업에 근무했기 때문에 인맥이 많으시죠. 대학생 자녀가 있으니 빨리 취업하세요. 지인이나 선배들을 부지런히 만나다 보면 기회가 있을 겁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심리적 압박감이 커진다. 물에 빠진 사람처럼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다.
당분간 명예퇴직금으로 버티겠지만, 앞으로 가족들이 경제적으로 힘든 생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가장으로서 어깨가 무거워진다. 아내와 자녀들의 눈빛이 예전같이 않게 느껴진다. 다급한 나머지 이제 어떤 결정이라도 내려야겠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퇴직불안에 휩싸이다 보면 냉정하고 현명한 선택을 하기 어렵다. 자신을 충분히 이해하지 않고 장래 커리어를 쉽게 결정해버린다.
지금까지의 업무경력과 경험과 관계 없는 일자리를 찾거나 지인들의 말만 듣고 쉽게 창업을 길을 선택한다. 자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않으면 취업 후에 벽에 부딪힌다.
재취업 일자리가 자신의 가치관, 적성, 경력과 맞지 않아 다시 퇴직하는 사례도 많다. 내 능력에 맞지 않거나 충분한 준비 없이 시작한 창업은 얼마 못가 폐업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잘못된 선택으로 혹독한 대가를 치를 수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현명한 선택을 할까? 먼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스스로 이러한 질문을 던져보라.“나에게 의미 있는 삶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나답게 살 수 있을까?”미룰 수 없는 나만의 꿈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답을 찾다 보면 자신을 냉정하게 바라보게 된다. 지금까지 걸어온 직업인생을 되돌아본다. 막연한 불안이 사라지고 긍정적인 사고로 바뀐다.
과거에 대한 후회와 원망에서 벗어나 소중한 꿈을 찾아 나선다.
나는 2018년 퇴직 후 친분이 깊은 선배를 만난 적이 있다. 그 선배의 말이 지금 더욱 생생히 떠오른다.
“자네는 과거에 자신이 없는 것 같네. 과거에 배우고 경험한 것을 활용하면 뭔 일이든지 할 수 있다네. 우리 모두는 실패한 과거가 있더라도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귀중한 재산을 갖고 있다네. 그것을 강점으로 바꾸는 사고가 필요하다네.”
중년기에 퇴직으로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한마디는 잠재된 용기와 에너지를 솟구치게 할 수 있다.
긴 인생에서 퇴직은 하나의 인생 이벤트다. 30년의 직업인생을 매듭짓는 것이다. 또한 새로운 커리어로 바꾸는 중대한 출발점이다.
앞으로 무엇을 할지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퇴직 전부터 철저히 자신을 분석하고 자신이 꿈꾸는 커리어를 차근차근 준비해야 한다. 현재의 안정된 상황에 무작정 기대거나 의존해서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장래 커리어를 향해 첫 발을 내딛는 용기가 결단이 필요하다. 50대 중년기에 커리어를 바꾸는 것은 남은 인생을 좌우하는 중요한 터닝포인트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