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이 되고 보니 사는 문제가 심각하게 다가온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젊을 때의 고민과는 또 다른 마음이며 착잡하기 그지없다. 숨통이 죄어 오는 것 같다. 의문투성이다.
어제 어떤 모임에서 부모님 제사문제가 화제가 되었다. 어느 집이든 먹고 사는 문제가 예전 갖지가 않고 모두들 나가서 벌어야 하는 세상이 되다가 보니까, 기일 날이 평일에 들기라도 하면 문제가 더 심각하게 대두가 된다. 비록 어느 집에만 국한 되는 얘기가 아닌 듯하다.
얼마 전 뉴스에서 보니, 종갓집 종부가 칠십이 훨씬 넘은 나이에 봉제사에 지친 나머지 이혼을 재기해서 관심을 집중케 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요즘, 부모님 제사를 한날로 겹쳐서 부(夫)제사날로 함께 지내고 마는 집이 늘어나고 있다고 하여서, 그게 말이 되느냐고 흥분했다가 비아냥거림을 듣고 말았다.
우리 집도 자유로울 수는 없으며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 절충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불교신자인 나를 남편이 마지막 가는 길에 굳이 싸워 가면서, 나를 기독교 신자로 만들어 놓고 하늘나라로 갔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사후의 일들을 미리 예견하고 그렇게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은 유교성향이 강하다 보니 아버지 제사를 지극정성으로 모시고 있다.
자식들도 점점 나이가 먹고, 둘 다 직장에서 역할이 더 많아지는 복잡한 생활인이 다 보니, 현실에 맞춰서 살아야 하는 세월이 되었으며, 산 사람의 기념일이든 뭐든 다 이제는 편리를 찾아서 휴일에 행사를 치르는 것이 보편화 된 것처럼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다.
올해는 아버지 기일에 아들이 의논을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며느리가 미리미리 제사장을 봐서 준비를 해 두면, 내가 돕고 해서 제사를 모시고 산소에 가서는 추도 예배를 드리고 하였었다. 15주기 동안 그렇게 정성스럽게 해 오던 것을, 며느리가 출장을 가는 일이 생겼고, 엄마도 이제 몸 상태가 좋지가 않으니 일요일에 미리 제사를 모시고 산소에 다녀오자고 하는지라, 그나마 잊지 않고 정성으로 제사를 모시는 자식들이 그리하겠다고 하니, 우길 명분도 힘도 없는 내가 스스로 자멸감이 드는 것이다.
세상이 바뀌었고 마음이 중요하지 형식이 뭐가 중요 하겠느냐 그리 하도록 하라고 하고선 무슨 심보인지 만감이 교차되며 생각이 흔들리고 있는 내가 아직도 유교와 불교, 기독교 사이에서 방황을 하고 있는 내가 아닌가 싶다.
백세시대라고 야단이지만, 과연 백세까지 무엇을 어떻게 하면서 살아야 할지, 또 세상은 무엇이 어떻게 변해 질지, 혼란의 연속이다. 난감하다는 생각이 든다.
남편은 남자는 역할이 끝나면 살아도 산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오래 사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고 하던 말이 자꾸만 생각이 난다. 그 때는 이해를 못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아니 그 나이를 넘기고 보니 생각이 많아지는 것이다.
통계에는 부모들이 오래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하고, 노인들은 오래살기를 바라지만,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노인자살률은 세계 일위라고 하고 노인 문제가 정말 심각하다.
세상은 온통 변했다. 이제 어른노릇은 먹히지 않고, 진정 어른노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문제가 심각한 것 같다. 꼰대취급이나 받고 노인들이 처신하기도 힘든 세상이 되어 버렸다고 한탄 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닌가 한다.
생명이 길어지다 보니 노인성질병으로 물리치료와 침술진료실은 병원마다 환자들이 넘쳐 나는 것도 한 예이다.
우선 노인들은 인식전환과 변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대에 살게 된 지금 혼란스럽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노년의 행복한 삶을 위해선 우선 인식의 전환을 위해서 교육도 받고 행동으로 옮기는 용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 같다.